새영화-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김기덕 감독은 지난 2일 기자시사회에서 자신의 아홉번 째 신작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을 “쉬어가는 작품”이라고 자평했다. 1996년 강렬한 이미지의 ‘악어’로 데뷔한 뒤 7년간 8편이란 필모그래피를 채워 나간 그이고 보면, 이 즈음에서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를 법도 하다.
 ‘나쁜 남자’ 등 그의 영화는 대부분 고통을 겪는 인물들의 극단적 삶과 강렬한 이미지들, 세상에 대한 증오가 활어처럼 파닥 거렸다. “지금까지 너무 격정적으로만 살아온 것은 아닌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봄 여름…’은 그러나 전작들과는 달리 김기덕의 ‘되돌아 봄’에서 출발한다. 이 영화를 만들면서 김감독은 ‘법열’을 깨닫고 싶어한 것처럼 보인다. ‘봄 여름…’ 역시 ‘고립’의 장소에서 다시 제 자리로 ‘귀환’하는 김기덕의 순환논리는 여전하지만 ‘불교’란 한국문화의 정서를 끌어들였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인지 영화는 외형만 다를 뿐이다.
 신작에서 그는 속세의 삶을 사계에 비유한다. 정적인듯 하면서도 그 안에서 부글부글 끓고 있는 용암같은 인간본성을 생동감 있게 풀어 나간다.
 깊은 산 속 연못 위에 단아하게 떠 있는 ‘물 위 사찰’에 노승과 동자승이 살고 있다. 봄 날, 동자승이 장난으로 물고기 몸에 돌을 매달아 죽이면서 살생의 ‘업’을 시작한다. 여름 날 17세의 소년으로 자란 동자승은 요양하러 암자에 온 소녀를 사랑하며 집착을 배운다. 소년이 절을 떠난 지 10여년 만인 가을, 아내를 죽인 살인범이 되어 산사로 도피해 들어온다. 죄값을 다 치르고 중년이 된 동자승은 폐허가 된 ‘물 위 암자’로 돌아와 이제 내면의 평화를 쌓기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봄….
 연못 한 가운데 단아하게 떠 있는 암자와 물 속에 잠긴 고목들이 어우러진 청송 주왕산 ‘주산지’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은 마치 꿈 속에서나 만날 법한 비경을 자아낸다. 가을 장면에서 마루바닥에 반야심경을 파는 장면은 비온 뒤 화창하게 갠 날처럼 선명하게 다가온다. 겨울에선 김기덕 감독이 직접 출연해 무술실력을 선보이기도 한다.
 ‘봄 여름…’은 제56회 로카르노국제영화제에서 넷팩상, 청년비평가상, 돈키호테상, 구제예술영화관연맹상 등 4개 부문을 수상하며 현지인들의 극찬을 받았다. 19일 개봉, 106분, 15세.<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