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은 다 됐어∼”
 80년대 말, 늦봄 고(故) 문익환 목사는 집회가 있을 때면 서두에 이 주문(呪文) 같은 염원을 외치곤 했다. ‘통일’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렁이고, 눈물이 주루룩 흐르던 시기였다. 핏덩이처럼 토해 낸 그 말은 함성으로 하늘에 닿았고 이후 남북지도자간 만남, 남북경협 등 가시적인 성과도 봤다. ‘호사다마’라 했던가. 지난 4일 대북경협 민간의 큰 축이었던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이 급작스레 사망했다. 온 국민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한 충격에 횝싸인 채 향후 남북관계를 긴장 반 걱정 반의 눈초리를 주시하는 중이다. 그러나 한국영화에서의 ‘통일을 향한 뜀박질’은 계속된다.
 ‘쉬리’(1998) ‘간첩 리철진’(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이중간첩’(2003)에 이은 통일영화 ‘남남북녀’(감독·정초신)는 오는 14일 “통일의 맥은 내가 잇는다”라고 선언한다. 12월엔 ‘동해물과 백두산이’(안진우), 내년 초엔 ‘태극기 휘날리며’(강제규)가 각각 라인업한 상태다. 주목할 점은 이들 영화들이 보여주는 변화한 시대상황과 달라진 의식이다.
 이들 영화에서 냉혈동물인 ‘북한군’ ‘북한사람’은 점차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으로 변신한다. 우리 영화의 커다란 분수령이 된 ‘쉬리’에서 남한 침투조 박무영(최민식)은 굶주린 하이에나 같은 캐릭터다. 북한군은 그러나 ‘간첩 리철진’에 와선 사람냄새가 나는 스파이(유오성)로, ‘공동경비구역 JSA’에선 듬직한 맏형(송강호)의 이미지로 환골탈태한다. ‘이중간첩’의 림병호(한석규)는 대치상황의 간첩이미지로 외도를 감행하지만 배경이 80년대 임을 감안하면 ‘통일대장정’이란 마라톤에서 숨을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남남북녀’가 그것을 증명한다. ‘남남북녀’의 북한사람은 맏형의 이미지를 넘어 목련처럼 순수하고, 아침이슬처럼 해맑은 20대 여성이다. 악마가 천사로 변하는 순간이다.
 이 영화는 남쪽남자와 북쪽여자의 사랑을 코믹하게 그린다. ‘쉬리’ 등 일련의 통일영화들이 비극적 사랑이었다면, ‘남남북녀’는 해피엔딩이며 코미디로 달라졌다는 점에서도 눈길을 끈다. 영화에선 사랑하는 여인에게 결코 총부리를 겨누지 않는다. 사랑의 눈길과 감미로운 입맞춤만을 보낸다. 대학생인 철수(조인성)와 영희(김사랑)는 연변이란 제3지대에서 만나 유적발굴을 하며 사랑을 새록새록 키워 나간다. 체제는 그들을 갈라 놓지만, 5년 뒤 이들은 하나가 된다.
 ‘동해물과 백두산이’는 술에 취해 동해에 표류하게 된 두 북한병사가 북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코미디. ‘남남북녀’에서 연변고분전문가이드 강일평로 ‘주연같은 조연’으로 활약한 공형진은 ‘동해물과…’에서 뺀질이 북한사병 림동해로, 처음 주연을 맡아 열연한다. 정준호는 북에선 일류였으나 남한에선 삼류로 전락하는 엘리트 북한장교 최백두 역이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는 코믹영화는 아니지만 6.25전쟁을 배경으로 역사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두 형제의 운명을 감동깊게 빚어내며 진한 페이소스를 가슴에 새겨줄 것으로 기대된다. 늦봄의 말처럼 한국영화에서 ‘통일은 다 됐다’. <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