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공화국 서북부에 위치한 카를로비 바리는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온천 휴양 도시다. 언뜻 동화 속 마을을 연상시키는 그 도시 중심부에서는 매년 7월이면 흔히 ‘동유럽의 칸 영화제’라고 불리는 국제 영화제가 열린다.
 중동부 유럽에서는 최고 권위와 역사-1946년에 출범했다-를 자랑하는 카를로비 바리 영화제가 그것이다. 다름아닌 최근 한국 영화를 향한 열띤 애정을 보이고 있는, 대표적 ‘친-한국’ 영화제다.
 2년 전엔 한국 영화 회고전을, 그리고 작년엔 김기덕 회고전을 가졌을 정도니 그 애정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터. 올해도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이 15편의 공식 경쟁작들과 함께 대상 크리스탈 글로브를 놓고 자웅을 겨룬다. 그밖에 이창동 감독(문광부 장관)의 ‘오아시스’가 ‘지평선-수상작들’ 부문에서,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와 고영민 감독의 단편 ‘8849 m’가 ‘독립 영화인 포룸’에서 선보였고.
 난 지금 바로 그곳에 머물고 있다. 올해로 제 38회를 맞는 영화제(4∼12일)에 참석 차 (현지 시각으로) 지난 6일(일요일) 밤 도착한 것이다. 3일 째인 9일 밤 현재, 난 이 영화제에 완전히 취해 있는 중이다. 세속의 모든 근심 걱정을 잠시 잊은 채, 마치 꿈 내지 비현실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것 마냥. 그토록 그리던 영화제였건만, 이제서야 처음 찾았기 때문은 아니다. 너무 아름다워 어찌 말로 다 형용할 자신이 없는, 내 상상을 초월하는 환상적 도시의 풍광 때문도 아니다. 풍광만으로 치자면 별천지에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닌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솔직히 이보다 더 아름다운 영화제가, 도시가 세상에 어디 또 있을까 싶기도 하다.) 출품작들의 수준이 그만큼 뛰어나서는 더더욱 아니다. 거장 오주 야스지로의 ‘Ohayo’ 등 3일 간 만난 20편이 채 안되는 영화들 중 몇몇 작품에 적잖이 매료되고 감동을 받긴 했지만, 그 정도는 부천 부산 등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 영화제에서도 얼마든지 맛볼 수 있는 터이다.
 그 보다는 이 곳의 한없이 자유로우면서도 인간적인, 정확히는 서민적 분위기 때문이다. 당장 칸의 그 지독한 귀족적·권위주의적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아니, 국내 그 어느 영화제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독특한 느낌이다. 소정의 비용을 지불하고 페스티벌 패스를 손에 넣은,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일반인들이건 프레스건 게스트건 심지어 VIP건 그들 사이엔 차별이 거의 없다. 정말이지 그 평등함이 퍽 부럽다. 혹 그것이 구 사회주의 국가에서 열리는 영화제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지는 몰라도.
 나를 또 한없이 감동시키는 건 영화를 향한 관객들의 뜨거운 사랑이다. 가령, 불편하기 짝이 없는 관람환경에서도 그들은 50∼60년 전에 만들어진 오주의 그 낡은 흑백 영화를 보기 위해 수백석의 좌석을 채우고 영화가 끝난 뒤엔 열띤 박수를 보내곤 한다. 그러니 어찌 감동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난 내년에도 이곳을 또 찾지 않을까, 싶다. 그 이후로도 계속, 설사 다소의 (경제적·시간적) 무리가 따른다 할지라도...
 
  카를로비 바리에서 전 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