쫓는 자와 쫓기는 자(9) 인구는 더욱 난감해진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이새끼, 너 이제 걸렸지, 하는 표정으로 인구를 지켜보던 리상위가 한번 더 기회를 준다는 듯 인구를 달랬다.

 『혹 지난번에라도 그 쪽으로 지나간 적이 있으면 왜 그쪽으로 지나갔는지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보라. 차를 몰고 그 쪽으로 지나갔기 때문에 기런 기억이 인구 동무 머리 속에 남아 있었을 게 아닌가?』

 인구는 빨리 리상위를 설득시킬 수 있는 말을 둘러대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으면 사관장과 같이 영실 동무의 집에 갔다는 이야기까지 다 해주어야만 될 것 같았다. 그래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사관장과의 약속을 저버리는 배신행각처럼 느껴졌다. 사나이끼리 악수를 나누며 한 약속은 목숨이 끊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지켜야 하고, 지킬 자신이 없으면 애당초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그가 가지고 있던 평소의 가치관이었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기억을 더듬는 시늉을 하다가 고개를 들었다.

 『개성시에 갔다가 돌아올 때는 늘 월암리로 들어가는 숲길을 이용해 리복실고개 쪽으로 올라갑네다. 그런 기억 때문에 아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적은 것 같습네다.』

 리상위가, 이 쳐죽일 새끼 봐라, 하는 시선으로 잠시 쳐다보다 다시 물었다.

 『개성시에는 왜 갔는가?』

 『지도자 동지가 주시는 선물을 접수하러 갔더랬습네다.』

 『지도자 동지 선물을 왜 개성시에 가서 접수하였는가?』

 『군단 산하 사단장과 정치위원 동지들께 보내는 지도자동지의 선물은 평양에서 렬차 편으로 내려오는데, 그런 선물은 꼭 군단 사령부 후방사업부에 가서 받아 옵네다.』

 『기런데 왜 자술서에는 량정사업소에 갔다오면서 그 쪽으로 왔다고 적어놓았는가?』

 『그날 저녁 머리가 아프고 정신이 어찔어찔해서 혼동한 것 같습네다.』 리상위는 낚아놓은 대어를 놓친 강태공처럼 허탈해 하다 다시 물었다.

 『지금도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운가?』

 『아닙네다. 지금은 기렇지 않습네다.』

 『기럼 이건 본 기억이 있는가?』

 리상위는 군단 상급참모가 준 쪽지와 주먹밥 보자기를 내놓았다. 인구는 미간을 찌푸리고 주먹밥 보따리와 쪽지를 잠시 지켜보았다. 똑같은 보따리와 쪽지가 세 개씩 보여 눈앞이 몹시 혼란스럽고 정신마저 어지러웠다. 그러나 주먹밥 보따리는 어디서 한번 본 것 같았다. 내가 저것을 어디서 봤더라….

 희미한 기억의 저편에서 복순 동무의 얼굴이 다가왔다. 사관장이 내려주던 입쌀마대를 받아 숲 속으로 던져놓고 차 옆에서 땀을 닦고 있을 때 생각지도 않던 복순 동무가 다가와 건네주던 주먹밥 보따리 같았다. 그러나 쪽지는 아무리 봐도 기억이 없었다. 확실한 기억이 있는 것만 대답하고, 그 나머지 희미한 것들을 모른다고 대답하라는 위생지도원의 조언이 떠올라 인구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