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뜻밖이다. 다음 주 선보이는 한국 영화 ‘싱글즈’(감독·권칠인)에 이렇게까지 매료될 줄은 정말 몰랐다. 뭐 ‘살인의 추억’ 같은 대단한 문제작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러운데다 정색하고 따지고 보면 흠들 또한 적잖건만….
 그래서였다. 시사회 장에서 투자 관계자를 만나 대화를 나누며, ‘15세 관람가’ 등급을 받았으니 영화가 심심하지 않겠냐는 둥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던 건. 하지만 심심하기는커녕 1시간 50분이 후딱 흘렀다. 종반 무렵 다소 처지긴 했으나 참지 못할 지경은 아니었다. 아니, 호흡이란 측면에선 그쯤의 처짐은 외려 필요할 법도 했다. 뭐 롤러코스터 식 블록버스터도 아니고 기폭이 있기 마련인 코믹 멜로드라마니까.
 더욱 당혹스러운 건 보기 전만 해도 영화가 내세울 게 별로 없는 그렇고 그런 범작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당장 평론가로서 그 무엇보다 우선시하기 마련인 감독 요인부터가 그랬다. 남다른 안목을 자랑하는 제작사 사이더스-‘8월의 크리스마스’ 등을 통해 그 안목을 여러 차례 입증한 바 있으며 ‘살인의 추억’을 통해서는 드디어 그 기다리던 대박을 터뜨린 문제의 바로 그 제작사다. 그러고 보니 원작이 카마타 토시오의 ‘29살의 크리스마스’이던데, 그렇담 ‘싱글즈’는 ‘7월의 크리스마스’?-에 의해 선택받았다면 주목할 만한 재능이 있으리라 예측할 수는 있었지만, 그런 초보적 기대도 없었다. 하기야 감독의 데뷔작 ‘사랑하기 좋은 날’(1995)조차 보질 않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래, 영화를 보고 싶다는 맘이 거의 없었던 게 사실이다. 평소 내가 좋아하는 엄정화가 출연했다는 것쯤이 구미에 당겼지만, 그것도 내세울 만 한 건 아니었다. 그런데 웬걸, 겉보기엔 한없이 가벼워 보이기만 했던 영화는 심상치 않았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자. 자기 네 삶에서 사랑이 아닌 우정을 선택하는 여성 주인공들을 본 적이 있는가? 적어도 난 없다. 상대적으로 친구를 좀더 중시한다는 남자들과 달리 여자들은 으레 사랑을 더 중시한다는 게 통념 아닌가! 물론 제목에서 그 선택은 이미 제시되어 있지만 그래도 그건 내게 진정 의외였다. 고정관념이 와르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뿐만이 아니다. 엄정화, 이범수는 물론 장진영, 김주혁 등 출연진 개개인의 연기는 말할 것 없고 그들 상호 간의 조화는 시쳇말로 장난이 아니었다. 성격화도 그렇고. 모 주간지에 리뷰를 하면서 “간만에 만나는 ‘쿨(cool)’한 국산 코미디다. 뒷맛이 퍽 상쾌하다. 그 맛이 ‘동갑내기 과외하기’나 ‘엽기적인 그녀’ 등 이른바 대박코미디들을 능가한다. ‘반칙왕’의 짙은 페이소스는 부재해도, 그 부재를 상쇄시키고도 남을 미덕들로 넘실댄다”고 적은 건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러니 어찌 뜻밖이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