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사수 궐기대회? 아련하고 알싸한 ‘첫사랑’이란 어감과 투쟁적이고 정치적이며 우스꽝스럽기까지한 ‘사수’ ‘궐기대회’란 단어의 조합이라니….
그러나 이런 제목을 생각해 낸 오종록 감독의 사유의 깊이는 어느 정도 관객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제목이 콘텐츠와 대화적이거나 메타포를 품고 있진 않지만, 영화 ‘첫사랑…’는 이런 직접적이고 투박한 제목이 훨씬 잘 어울리는 영화다.
TV드라마 ‘피아노’를 만들었던 그는 영화 ‘첫사랑…’을 ‘터칭코미디’로 빚어내며, 안정적으로 스크린에 데뷔한 것으로 보인다. 오감독은 ‘첫사랑…’에서 웃음 속에 감동을 꽃 피워 내며, 곰곰히 생각해야 할 인간 삶의 한 부분을 재밌게 얘기한다.
태일(차태현)과 비슷하게 태어난 일매(손예진)은 엄마를 일찍 여의고 태일 어머니의 젖을 함께 나눠 먹으며 자란다.
“니 거시기에 털만 나래이. 그날 부로 내 딸래미 니한테 시집 보낼끼다” 젖동냥이 미안했던 일매 아버지 영달(유동근)은 태일에게 ‘거기’에 털만 나면 딸을 주겠다는 말을 별다른 생각없이 내뱉는다.
순진한 태일은 그 말만 믿고 털이 나기 시작한 13세 때 영달 앞에서 바지를 까내리며 일매를 줄 것을 요구한다. 영달은 다시 ‘일류 대학에 가면’, ‘사법고시에 패스하면’ 등등의 핑계를 대며 위기를 모면한다.
첫사랑을 향한 태일의 집념은 ‘사시 1차 패스’란 결과로 나오고 영달은 드디어 허락을 내린다. 그러나 복병은 전혀 엉뚱한 곳에서 나와 태일의 의표를 찌르고 만다. 일매는 결혼할 남자가 있다며 태일의 ‘일편단심 민들레’를 ‘홀씨’로 불어 날려 버린다.
영화에선 차태현의 ‘엽기적인’ 코믹연기와 ‘클래식’한 손예진의 동선, 일등 신랑감만을 사위로 받아 들이겠다는 ‘가문의 영광’을 중시하는 유동근 특유의 어리숙한 카리스마가 삼박자를 이룬다.
눈오는 날 일매 회사 앞에서 머리띠를 두르고 1인시위를 하는 등 ‘은행나무침대’(감독·강제규)를 패러디 한다거나,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와 함께 온몸을 던져 열연하는 차태현의 연기는 ‘엽기적인 그녀’에서의 그것을 넘어설 정도로 압권이다.
손예진은 ‘클래식’(감독·곽재용)에서는 보여주지 않았던 비키니를 입은 매혹적인 곡선을 공개하며, 유동근은 ‘가문의 영광’(감독·정흥순)에서 보여준 코믹연기가 물이 오른 모습이다.
사랑조차 인스턴트가 되고 형식과 기교가 중요시 되는, 그래서 결혼한 세 쌍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삼분해체’의 요즘 한국사회에서, 희귀종을 넘어 변종으로까지 보이는 지고지순한 첫사랑을 그린 점은 마음을 움직인다.
그러나 일류대, 사시합격 등을 사람의 가치로 평가하고 딸에게 아버지의 인생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가부장적 시각은 다소 거슬리는 부분이다. 27일 개봉, 110분, 12세. <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