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장화, 홍련’이 “터졌다”. 지난 3주간 강타했던 ‘매트릭스 열풍’을 가볍게 잠재우며. 개봉(13일) 3일만에 전국 74만4천500명(서울 21만4천여명)을 동원했단다. 예상을 훨씬 뛰어 넘는 거센 흥행 돌풍이다. 한국 영화 개봉 기록으로는 최고치란다. 게다가 “영화가 진짜 무섭데….” 등의 입소문이 돌면서 흥행 열기가 한층 더 가속화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17일(화) ‘첫사랑 사수 궐기 대회’ 시사회 참석차 종로3가 서울 극장엘 갔더니 길게 서 있는 줄은 ‘장화, 홍련’ 창구 앞뿐이었다. 미안하게도 그 옆에 있는 ‘역전에 산다’나 ‘매트릭스 2’ 창구는 한산했다.
감독 김지운은 ‘조용한 가족’과 ‘반칙왕’에 이어 연속 3연타를 날리는, 그래 장편 영화 3편 모두를 흥행시키는 결코 흔치 않은 쾌거를 이룩했다. 이 현실이 반가운 우선적 이유는 전적으로 개인적 인연 탓이다. 비록 친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난 그의 친누나인 연극배우 김지숙씨와의 개인적 친분 덕분에 이미 십수년 전부터 그를 알고 지내왔다. 유난히 말 수가 적었던 그는 연극판에 있으며 죽도록 고생-물론 경제적으로-하던 당시, 전혀 그런 고생을 내색하지 않았다. 속이야 어땠는지 모르지만, 현실이나 세상을 향한 적개심 따위를 마구 표출하지 않았다. 많은 걸 속에 담고 삭히며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나보다 몇 년 후배인 그는 여러 모로 오히려 선배다웠다. 그가 남달리 믿음직스러웠던 건, 나아가 언젠간 크게 사고를 칠 친구군, 생각하곤 했던 건 그래서였다. 그에겐 내에 결여된 진중함과 사려 깊음 등의 미덕들이 즐비했던 것이다. 난 바야흐로 그가 누리고 있는 성공의 요인이 바로 그런 인격적 요인 덕분이라 확신한다.
‘장화, 홍련’의 대박이 반가운 또 다른 이유는 그의 작품들이 비평적 성취마저도 일정 정도 획득하면서 대중적 성공을 일궈냈기 때문이다. ‘장화, 홍련’을 향한 비판이 적지 않은 게 사실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더 반가운 건 장르적 이유 탓이다. 그간 비인기 장르로서 홀대 받아오던 공포물로서 지금과 같은 신기록을 수립해서다. 그로써 ‘여고괴담’-지난 주 심각한 착오로 ‘고교괴담’이라 썼는데 정정한다-이나 ‘폰’의 성공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이 입증되어서 이기도 하다.
우리 영화의 고질적 문제점 중 하나는 다양한 장르가 부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설사 뜻 깊은 장르적 시도가 이뤄진다 하더라도 좀처럼 큰 성공을 거두지 못하곤 한다는 것이다. 그래 기껏해야 인기 장르는 고작해야 액션물이나 코미디, 멜로물 정도 아니던가. ‘장화, 홍련’은 공포 영화를 인기 장르에 편입시키는 중대한 업적을 수행했다. 그것도 당대 최고의 스타가 출연하지도 않는, 그 점에서는 다분히 모험적 작품으로. <전찬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