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 센스’ ‘디 아더스’ 등 일찌기 할리우드를 강타했던 ‘영령’들이, 다시 말해 ‘귀신’들이 우리 영화계를 공습할 조짐이다. 그것도 토속 색 짙은 귀신들이. 그 신호탄이 이번 주 개봉된 김지운 감독(‘조용한 가족’ ‘반칙왕’)의 ‘장화, 홍련’이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 원귀 이야기인 고전 ‘장화홍련전’을 바탕으로 빚어진 영화는 그 어느 나라 못지않은 섬뜩한 귀신들과 그 귀신들이 머무는 공간을 선보인다.
‘장화, 홍련’만이 아니다. 정보에 따르면 ‘거울 속으로’ ‘아카시아’ 등 적잖은 영화들에서 귀신들이 맹활약할 전망이다. 그렇다면 조폭 열풍에 이어 이번엔 귀신 강풍이 불어닥치는 걸까? 장담할 수는 없다. ‘장화, 홍련’의 흥행과 그 여파부터가 과연 어떨 지 좀더 두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당분간 우리 영화의 ‘공포화’ 혹은 ‘귀신화’(?)는 한층 가속화되리라는 것이다. 그 이유로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우선적 이유는 한국 영화가 산업화로 치닫기 시작한 1990년대 중반 이후로도 공포물은 상대적으로 취약한 장르였다는 것, 그래 장르적 개척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고교괴담’ ‘폰’ 등 비교적 큰 성공을 일궈낸 일련의 국산 공포물에서 확인할 수 있었듯 말이다.
수출 요인도 그 중 하나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공포물에 담긴 아시아적 보편성으로 인해 공포물의 수출 전망이 낙관적이라고 한다. 아시아 영화에 인색하기 짝이 없는 서구 관객들에게도 일본을 필두로 한 아시아식 공포는 제법 약발이 먹힌다는 것이다. 올 칸 마켓에서도 그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을 띨만했다. 다른 영화들과 더불어 ‘장화, 홍련’이 마켓 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출고를 올린 것이다.
그밖에 사회, 심리적 요인도 작지 않아 보인다. 생존조차 힘든 현실 사회를 향한 불안감 및 위기감 등이 과거에는 좀처럼 보기 힘들었던 비·초현실적 귀신 캐릭터나 분위기, 상황 설정 등으로 나타난다고 할까. 과거와는 달리 작금의 귀신들에게서 지극히 인간적이며 현실적 성격이 짙게 풍기는 건, 그래서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 점은 목하 영화화가 진행중인 몇몇 문제작들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난 이번 주 내내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시행하는 ‘2003년도 저예산예술영화제작지원’ 사업의 심사위원으로 참여해 40편에 달하는 시나리오를 심사했는데, 그 중 내 눈길을 끈 가장 두드러진 어떤 특징이 다름 아닌 그것이었다. 당장 한국 영화의 대표적 리얼리스트의 한 사람이었던 박광수 감독의 ‘방아쇠’부터 그렇다. ‘황당하게도’ 비무장지대 안에 주둔하는 일종의 비밀부대인 G(uard)P(ost) 내에 근무하는 주인공이 영락없는 여귀신과 사랑에 빠지는 것 아닌가. ‘꽃섬’의 송일곤은 차기작 ‘거미 숲’에서 그보다 한발 더 나아가 한바탕 유령 이야기를 가히 환상적으로 펼친다. 이만하면 ‘귀신들이 우리 영화계를 공습할 조짐’이라는 내 주장이 그저 평론가 특유의 과장이요 허풍인 것만은 아니지 않을까….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