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선보인 ‘튜브’(TUBE)-지하철을 뜻하는 영국식 표현이다-는 우리 영화사상 최초로 ‘본격 지하철 액션’을 표방한 ‘초강력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다. ‘채널69’ ‘쉬리’ 등의 조감독을 지낸 백운학 감독의 데뷔작이다.
영화는 시종 ‘쉬리’를 비롯해 ‘라이터를 켜라’ ‘스피드’ ‘다이 하드’ 미션 임파서블‘ ‘머니 트레인’ 등 이전의 숱한 국내외 액션물들을 ‘노골적으로’ 벤치마킹한다. 감독은 마치 그 화제작들보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액션을 구현하는데 승부를 건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영화의 무게 중심을 박진감 넘치는 액션 연출에 두는 것이다. 따라서 그 점으로만 치자면 영화는 일단은 상당 정도 성공을 거둔 것으로 판단된다. 영화를 보면서 “제법인데”, 할 만한 액션 장면들이 적잖은 것이다. 공사 중이었던 김포공항을 전격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을, 영락없이 ‘쉬리’를 빼닮은 도입부의 한바탕 액션 시퀀스부터가 그렇다. 뒤이어 지하철을 무대로 본격적으로 펼쳐지는 액션들은 말할 것 없고.
여러 흠에도 ‘튜브’를 전적으로 비판만 할 수 없는 까닭은 그래서다. 국회 촬영조차 허용되지 않는 우리 수준의 일천한 영화 환경에서 실제 공항이나 지하철을 영화의 무대로 담을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영화적 성취인 것쯤은 알기 때문이다. 영화의 실감 연출을 위해 필수적이었을 인파들이 턱없이 빈약했다는, 그래 적잖이 어색했다는 느낌에도 불구하고 그 점을 들어 영화를 매도하고 싶지 않은 것도 실은 그 때문이다.
이상한 건 영화를 보며 문득 문득 감독이 꼭 액션으로만 승부를 걸려 했다는 것만은 아니라는 의문이 심심찮게 들었다는 사실이다. ‘초강력 스피드 액션 블록버스터’치고는 이야기의 야심이 다분히 과하며, 특히 트러블메이커 형사 장도준(김석훈)을 위시해 비운의 테러리스트 강기택(박상민), 소매치기면서도 비련의 여인으로 손색없는 송인경(배두나) 등 캐릭터들의 선이 지나치다 싶으리만치 굵다고 할까. 물론 결과는 정반대로 나왔다. 화끈한 액션에 의한 스펙터클 효과를 확보하기 위해서였겠지만, 영화는 이야기 요소들을 지나치리만치 과도하게 훼손시켰다. 극적 설득력을 치명적으로 희생시켜가면서까지.
감독은 어떤 인터뷰에서 “인물만큼은 확실하게 살리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이를 위해서 노력을 많이 했지만 의도만 살아 있지 보는 이들에게 감정으로 확 다가오는 것 같진 않다. 껍질만 남았다...”고 고백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왜 감독은 왜 지금과 같은 선택을 했을까? 성격화 등 이야기 요소가 지나치게 강화되면, 액션 블록버스터로서의 정체성이 크게 훼손되리라고 염려라도 한 걸까? 영화를 보는 내내 이야기의 꾸밈새를 보다 치밀하게 꾸몄더라면, 성격화(characterization)에 보다 세심한 신경을 기울였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든 건 그래서였다. 이런 류의 액션 블록버스터를 보면서 늘 하곤 하는 (저널 및 평론가들의) 상투적 투정이 아니라. <전찬일·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