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 유감, 혹은 한국 영화 유감?
 
 듣던 바대로, 그저께 발표된 제56회 칸영화제 공식 선정 작 최종 목록에는 한국 장편 영화는 단 한편도 없었다. 아쉽긴 하지만, 선정 기준이나 취향의 차이려니 치부하련다. 그럼에도 유감스러운 건 비공식 부문인 감독 주간과 비평가 주간에도 진출 작이 한편도 없다는 것이다. 산업적으로 뿐만이 아니라 비평적으로도 우리 영화들이 해외에서 적잖은 호평을 받고 있다더니만, 어떻게 된 걸까? 그럼 그것도 ‘거품’?
 개인적으로 더 큰 유감은 “혹시나”, 기대를 품었던 임상수의 ‘바람난 가족’이 칸 입성에 실패했다는 사실이다. 모 심사를 하며 본 영화는 2000년 칸 비평가 주간에 나갔던 ‘해피 엔드’(정지우) 못지않은, 단연 주목할 만한 문제작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감독 주간에 ‘딱’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영화적 수준으로 보나 감독의 이력 및 개성으로 보나. 그러나 기대는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 이유가 작품 내적 요인 탓인지, 외적 요인 탓인지는 모르겠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제의 정치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영화제 진출 성공을 위해 요구되는 ‘로비’-물론 선의의 모든 노력을 뜻하는 것이다-를 펼치면서, 혹시 어딘가 손발이 맞지 않은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할까. 2002년 처절한 수모를 겪은 일본이 올해 다시 2편이나 경쟁 부문에 진입시키는 쾌거를 이룩한 것이, 오로지 작품성만으로 이뤄진 거라고는 결코 볼 수 없는 탓이다.
 2001년에도 무려 3편이나 경쟁작을 내면서 일대 파란을 일으켰던 일본은 그 파란 못지않은 실망을 안겨주지 않았는가. 이마무라 쇼헤이의 ‘붉은 다리 아래 따듯한 물’말고는 말이다. 그러나, 이번만은 그들 영화가 남다른 기대를 불러 모으는 게 사실이다. 으레 그렇듯 자국 프리미엄을 뻔뻔스러울 정도로 적극 이용한 프랑스가 6편을, 스타 동원 등을 통해 영화제의 성패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닌 미국이 3편을 냈다는 걸 빼면, 경쟁작이 2편 이상인 나라는 일본이 유일해서다. 게다가 그 주인공들이 누구인가. 지난 97년 황금 카메라 상(신인 감독상)을 거머쥔 바 있는 ‘수자쿠’의 ‘무서운 신예’ 가와세 나오미와, ‘큐어’(97) ‘인간합격’(98) ‘거대한 환영’(99) ‘회로’(2001) 등을 통해 국내외적으로 폭넓은 팬들을 확보하고 있는 ‘문제의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아닌가.
 이래저래 이번 영화제는 그 어느 해보다 흥미진진할 성싶다.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나 피터 그리너웨이 등 그렇지만, 단연 눈길을 끄는 건 뜻밖에도 프랑스 이름들이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중견 앙드레 테시네와 ‘괴짜’ 베르트랑 블리에도 그렇거니와, 몇 개월 전 영화제를 통해 우리에게도 집중 소개된 바 있는 프랑스와 오종과, ‘포르노그래퍼’란 포르노그래피 적 문제작으로 2년 전 칸을 화끈 달궜던 베르트랑 보넬로 등의 ‘악동’들이...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