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쟝르가 다른 두 공연을 한꺼번에 본 느낌.’
 오늘 개봉한 ‘시카고’(감독·롭 마셜)는 브로드웨이의 ‘톱 뮤지컬’을 필름에 담아 낸 작품이다.
 시카고는 노래와 대사, 춤과 모션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들의 혼을 쏘옥 빼놓는다. 그렇다고 정신이 멍멍하거나 어지러운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폭풍우 뒤의 맑게 갠 하늘과 한층 푸르러진 신록처럼 영화는 ‘뮤지컬’ ‘영화’란 두 개의 선명한 인상을 남긴다. 두 개의 선명함은 ‘음과 양’처럼, 혹은 톱니처럼 맞물려 영화로서의 높은 완성도를 자아낸다.
 뮤지컬은 흔히 환타지 장르로 분류되기 십상이지만 시카고는 일종의 비판적 리얼리즘의 냄새마저 풍긴다.
 비판적 리얼리즘의 근거는 소모성 스타를 배출하는 쇼비즈니스계의 냉혹함, 진실을 선정주의로 덮어 버리는 매스컴, 엘리트의 위선 등으로 흐르는 내러티브다.
 영화는 ‘갱들의 천국’이었던 1920년대 시카고의 대형 뮤직클럽에서 시작된다.
 ‘글래머’한 섹시스타 ‘벨마 켈리’(캐서린 제타 존스)가 눈부시는 무대에서 재즈에 맞춰 관능적인 춤을 추고 있다. 그는 동생 벨마와 함께 시카고 최고 스타로 인정받고 있지만 이날만은 혼자 무대에 올랐다. 오늘, 동생과 불륜이었던 남편과 동생에게 방아쇠를 당겼기 때문이다.
 객석 뒤편에선 ‘록시 하트’(르네 젤위거)가 벨마를 선망의 눈길로 훔쳐보고 있다. 스타를 꿈꾸는 그 역시 스타탄생을 약속한 프레드가 몸만 탐냈다는 사실을 알고 분노의 탄환을 날린다.
 감옥에서 대면한 그들은 ‘권모술수’와 ‘임기응변’으로 승소율 100%를 자랑하는 변호사 ‘빌리 플린’(리처드 기어)을 만난다.
 빌리는 처음 벨마에게 접근하지만 대중의 관심도가 벨마에게서 멀어지자 록시에게 다가선다. 빌리는 언론플레이를 통해 록시를 마침내 ‘땅바닥에 내팽겨쳐 날개를 퍼덕이는 새’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시카고는 앞서 1927년 무성영화로 제작된 바 있다. 이것이 1975년 ‘뮤지컬의 신’으로 칭송받는 ‘밥 포셔’가 뮤지컬로 무대에 올리면서 일약 세계적인 작품으로 떠올랐다.
 ‘롭 마셜’은 토니상 후보에 여섯 차례나 오른 연극계에서는 이미 상당한 인정을 받은 30대 연출가. 영화에서도 그의 연출적 재능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것은 물론이다.
 롭은 현실과 상상, 현재와 과거를 교차로 편집하면서 ‘환타스틱’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죄수복을 입고 창살 앞에 서 있는 재소자들을 오로라 같은 실루엣으로 비추는가 하면, ‘가엾은 천사의 탈을 쓴 여우’ 록시를 취재하는 기자들을 빌리가 조종하는 인형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
 그는 연극에선 쉽지 않은 미장센과 디테일을 통해 “사람들은 내가 연극만 잘 만드는 줄 아는데 천만에, 난 영화도 문제 없다”고 웅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카고는 지난 23일 미국 LA 코닥극장에서 열린 아카데미상 시상식에서 작품, 여우조연(캐서린 제타 존스), 편집, 음향, 미술, 음향 6개부문을 수상했다.
 베를린영화제 개막작으로 초대받기도 한 이 영화는 미국에서는 지난해 12월 개봉한 이래 1억2천만달러(약1천5백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113분, 15세 이상.<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