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전쟁과 아카데미 영화상

올 제 75회 아카데미 영화상 결과를 보면서 새삼 확인한 건 영화상 및 영화제 특유의 정치성이었다. 달리 말하면 현재 한창 중인 이라크 전쟁이 아카데미 회원들의 최종 선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을 게 틀림없으리라는 사실이었다.
뮤지컬로선 ‘올리버!’(1968) 이후 처음으로 작품상을 거머쥔 ‘시카고’의 선전은 일찌감치 예상되었으니 굳이 상술하진 않으련다. 니콜 키드먼-이완 맥그리거 주연의 ‘물랑 루즈’의 대성공에서 이미 그것은 충분히 예견된 것이었다. 후보지명된 13개 부문에서 무려 6관 왕을 차지하긴 했으나, 오히려 기대를 모았던 감독상(롭 마셜) 여우주연상(르네 젤위거) 촬영상(다이언 비브) 등 여타 부문에서 수상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할지도 모르겠다.
언뜻 의아하게, 파격적으로 다가서는 결과는 ‘피아니스트’의 감독상(로만 폴란스키)과 남우주연상(에이드리언 브로디) 수상이다. 개인적으로 그 두 상은 10개 부문에서 지명되었으면서도 무관에 그치는 수모를 당한 마틴 스코세지 감독의 ‘갱스 오브 뉴욕’이 차지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피아니스트’가 수상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다. 작품의 총체적 수준에서 판단할 때, ‘갱스 오브 뉴욕’이 단연 그 범작을 압도하기에 하는 말이다.
현존 최고의 성격파 배우 중 한사람인 다니엘 데이-루이스는 단언컨대 생애 최상의 열연을 펼쳤다. 호연을 펼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를 초라하게 보이게 할 정도의, 영화의 으뜸 매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의 감동적 열연을. 브로디 역시 열연을 펼쳤으나 데이-루이스에 비하면 조족지혈에 지나지 않았다. 스코세지의 연출력도 매한가지다. 비록 그의 최고작이라 하긴 뭣해도, 폴란스키의 그것을 제압하기엔 추호도 모자람이 없다. 폴란스키의 안정된 연출호흡 등은 주목할 만했으나 그뿐이었다. 예의 강렬한 임팩트도 도발성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장의 연출치곤 지나치게 평범했다. 심지어는 일말의 센티멘털리티까지 풍기기조차 했다.
그러나 이런 평가는 영화상의 정치성을 거의 고려하지 않은 아주 순진한 생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을 성싶다. 지독히도 주관적이라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기 힘들 테고. ‘피아니스트’는 이미 2002년 칸영화제 황금종료상 수상 등을 통해 그 작품성을 충분히 인정 받은 수작인 탓이었다. 서구 비평가들로부터도 2002년 최고작으로 선정되기도 했고…
뿐만이 아니다. 영화는 여로 모로 명분 없는 전쟁을 수행하면서도 핍박 받는 이라크 국민들에게 자유를 안겨주겠다느니 세계 평화를 확보하겠다느니, 미국식 억지 휴머니즘을 마구 들먹이고 있는 부시 미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내 보수강경파들의 입맛에 딱 들어맞지 않는가! 평소 영화상의 작품 외적 맥락을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여왔으면서도, 난 그 기초적 사실을 잊는 치명적 오류를 범한 것이다. 전 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