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몇 주 사이 꽤 많은 영화들을 보았다. 그 중엔 할리우드 화제작들도 몇 편 있다. 오늘 개봉된 ‘디 아워스’와 ‘8마일’를 비롯해, 지난 해 ‘취화선’과 칸영화제 감독상을 공동수상한 ‘펀치 드렁크 러브’, 노장 잭 니콜슨과 캐시 베이츠의 숨 가쁜 열연이 인상적인 ‘어바웃 슈미트’, 그리고 거장 마틴 스코세지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카메론 디아즈, 다니엘 데이 루이스 등을 기용해 환상적으로 빚어낸 ‘현대판 국가의 창생’, ‘갱스 오브 뉴욕’에 이르기까지.
 모두들 톡톡 튀는 개성을 지닌, 놓치기 아까운 문제작들이다. 각양각색의 개성에도 불구하고 이들 작품들에는 주목할 만한 어떤 공통점이 흐르고 있다. A급 연출에 A급 스타들이 A급 연기를 펼친다는 따위의 뻔한 말을 하려는 건 아니다. 그보다는 훨씬 더 유의미하고 심층적 차원의 그 무엇, 다시 말해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성찰하게끔 하는 원초적 힘 같은 걸 말하는 것이다.
 우선 니콜 키드먼의 경이적 변신이 핫이슈가 되고 있는 ‘디 아워스’는 1923년과 51년, 2001년 각기 다른 세 시기를 살아가는 세 여인의 삶을 통해 삶의 보편성을 잔잔하게 설파한다. 영화에서 남다른 울림은 혹 느낀다면 무엇보다 그 보편성 덕분일 터. 울프라는 존재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면 다소 심심하게 비칠 수도 있겠지만. 반면 힙합계의 백인 슈퍼스타 에미넴과 ‘L.A. 컨피덴셜’의 명장 커티스 핸슨 감독이 만나 탄생시킨 ‘8마일’은 랩 이외에는 출구라곤 전혀 없는 듯한 극히 거친 미국의 디트로이트 8 마일 가, 밑바닥 인생들의 삶을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한다. 영화는 당장 랩이 왜 흑인의, 저항의 음악인가를 확실히 각인시켜준다. 래퍼 에미넴은 반 자전적인 이 스크린 데뷔작에서 어지간한 연기파 배우도 흉내 내지 못할 놀라운 연기력을 펼쳐 보인다. 그럴 법한데도 감독은 결코 영웅주의적 플롯으로 흐르지도 않는다. 이런 덕목들로써 영화는 남다른 울림 정도가 아니라 오랜 동안 잊혀지지 않을 강렬한 전율을 선사한다.
 한편 ‘어바웃 슈미트’는 정년퇴직하게 되는 60대 중반의 노인 슈미트의 삶을 통해 삶의 조건 및 허망함을 때론 유머스럽게 때론 구슬프게 제시한다. ‘갱스 오브 뉴욕’은 피로 점철되었던 미국의 형성 사를 통해 1860년대 뉴요커들의 삶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놀랍지 않은가? 영화 산업의 종주국 할리우드에서 이처럼 인간을, 삶을 되돌아보게끔 하는 무게감 있는 문제작들을, 그것도 어쩌다 한두 편도 아니고 적잖은 수의 작품들을 줄곧 제작해 선보인다는 사실이. 할리우드를 벤치마킹하느라 정신없는 우리는 정작 그런 작품들을 좀처럼 빚어내지 못하고 있거늘. 이 아이러니를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난 요즘 할리우드 영화의 저력에 새삼 감탄하고 있는 중이다.
  전찬일(영화 평론가)
 
 
 <김진국기자> freebird@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