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전투(19)

 『종일 기침을 해대며 괴로워하던데……. 밤에는 잘 잡네까?』

 원장이 물었다. 화영은 집에서 생활하는 순미의 모습을 말해 주었다.

 『저녁밥 먹고 나면 기냥 곯아떨어집네다. 기런데도 아침에 깨우면 잠이 부족한 애처럼 징징거리며 투정질이야요.』

 『와 기럴까?』

 『걱정거리를 안겨드려 죄송합네다. 어디 몸이 아픈 것 같아 이는데 낮에 잘 좀 보살펴 주시라요…….』

 화영은 가방 속에 넣어온 빵을 꺼내 놓으며 교양원이 데리고 온 순미를 받았다. 자다가 일어났는지 순미는 얼굴이 푸석푸석했다.

 『순미야, 인사해야지.』

 순미가 쩌억 하품을 해대다 차려 자세를 하며 고개를 숙였다. 원장과 교양원은 자다가 일어난 순미가 자세를 바로 해 절을 하는 것이 대견한지 등을 토닥거려 주며 잘 가라고 인사했다.

 화영은 내일 아침에 또 뵙겠다며 유치원을 나왔다.

 바른손으로는 순미 손목을 잡고, 왼손으로는 기저귀 가방과 내일 아침에 먹을 주부식물을 들고 유보도(인)를 따라 걸으니까 몸뚱이가 앞으로 나가는지 뒤로 끌려가는지 분간도 안될 만큼 힘이 들었다. 그런데다 등에 업은 순석이는 받쳐오던 손을 빼버리니까 자꾸 쳐져서, 어깨에 매달려 있던 아이가 엉덩짝 위에 얹혀 있는 느낌이었다. 화영은 몇 차례 땀을 훔치며 쉬었다가 겨우 사회안전부 아파트 경비실 앞에 도착했다.

 『순미야, 너 이제 앞장 서 혼자 좀 걸어라. 엄마 힘들어.』

 처지는 아이를 치켜올리며 화영은 순미의 손목을 놓았다. 자다가 일어나 콜록콜록 기침을 해대며 따라오던 순미가 아장아장 앞장 서 걸었다. 전등불도 켜져 있지 않은 아파트 계단을 순미와 함께 걸어 올라가며 또 몇 차례 땀을 흘리고 나니까 세대주(남편) 생각이 간절했다. 이렇게 힘들 때 함께 올라가며 가방이라도 좀 받아주든지, 순미라도 좀 안고 가면 산꼭대기 같이 높아 보이는 아파트 계단도 훨씬 수월하게 올라갈 것 같았다. 그렇지만 순미 아버지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퇴근길에 유치원으로 달려가 아이를 한번 데려오는 일도 없었다. 곰곰 생각하면 여자로 태어난 게 너무 억울하고 서럽기도 했지만, 공화국 남정네들이 다 그 모양이니 순미 아버지만 나무랄 일은 아니었다. 따지고 들자면 김일성 원수님과 지도자 동지부터 훑어 내려와야 하는데 그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화영은 얼굴이 땀투성이가 되는 것 같아, 5층 층계참까지 올라와서는 또 땀을 훔치며 순석이를 치켜올렸다.

 『후유.』

 조선어 한 자 쓰지 못하는 까막눈이라도 혼자 단출하게 사는 정복남 동무가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래가 보장되는 순미 아버지와 연애를 할 때만 해도 혁명가정을 이뤄 아이 낳고 사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은 생각지도 못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