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국 영화를 되돌아보다
 
 영화전문주간지 씨네21은 12월31일자 송년호 특집란에서 2002년 한국 영화를 결산하며 10인의 제작·투자자에게 여덟개의 질문을 던졌다. 그 중 몇개는 비즈니스맨이 아닌 나도 답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그에 답하면서 2002년 한국 영화계를 되돌아보련다.
 1. 올해 한국 영화가 양적, 질적 성장을 이뤘다고 보는가? 양적으론 단연 성장했다. 11월 말 서울 기준으로 장편 극영화 개봉 편수만도 70편-단편영화 묶음을 포함한 편수까지 합산하면 총 86편이며 이하 점유율 등은 합산 수치를 근거로 한 기록이다-에 달해 작년 대비 20여편이나 증가했다. 점유율은 46%에 근접하는 45.8%로 집계되었는데, 관객 수는 1천6백40여만명으로 14.3%나 증가했다. 반면 질적으로는 “유보적”이라고 해야 할 듯. ‘오아시스’ ‘복수는 나의 것’ ‘죽어도 좋아’ ‘로드 무비’ ‘나쁜 남자’-이상이 내가 뽑은 올해의 한국 영화 베스트5이다- 등 주목할 만한 올해의 문제작들에만 한정하면 분명 발전했겠지만, 전체적으로는 개봉 편수가 늘어난 만큼 하향평준화된 감이 없지 않아서다.
 2. 산업적인 측면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크게 두 가지를 꼽으련다. ‘집으로…’의 예상 밖 대흥행과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등 일련의 한국형 블록버스터들의 예고된 대참패. 전자는 자극성, 보고 들을 거리로 치닫고 있는 한국 영화의 어떤 경향과는 거리가 먼 작품임에도 대중적·비평적으로 흔치 않은 큰 결실을 맺음으로써 새로운 잠재력을 제시했으며, 후자는 맹목적 ‘대물지상주의’(?)의 병폐를 새삼 확인시키면서 투자 분위기의 급냉을 초래, 유서 깊은 위기감을 다시금 고조시켰다.
 3. 가장 심각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해결방안은? 이 역시 두 가지를 꼽으련다. 숨가쁠 정도로 급상승되고 있는, 마케팅 비용을 포함한 총제작비와 극도로 심화되고 있는 관객들의 편식현상. 언뜻 무관해 보이지만 실은 밀접한 연관이 있는 이 둘은 한국 영화 위기론의 근본적 원인들이다. 해결방안? 글쎄. 스타들의 몸값을 비롯해 인건비 비중이 큰 상황에서 한번 오른 몸값이 내려가길 기대하는 건 난망일 터. 관객들의 편식이 어느 날 중단되거나 사라질 리도 만무하고. ‘…론’이 아니라 실제로 위기 상황이 펼쳐지면 그때 비로소 진정·조정 국면에 접어들 수 있을까? 그래도 해결방안을 내보라면 투자배급·제작사들의 지나친 경쟁 자제와 일종의 관객 운동 정도. 설사 인위적·법적 방법을 동원한다 하더라도.
 4. 가장 인상 깊은 영화는? 작품/가성과 대중성의 결합에서는 ‘오아시스’. 작품의 완성도 면에서는 ‘복수는 나의 것’. 진정성과 도전정신에서는 ‘죽어도 좋아’…. 작품성을 떠나 개인적으로 큰 자극이 된 영화를 꼽으라고? 임창정의 열연이 지금도 눈앞에 삼삼한 ‘색즉시공’. 그토록 천박한 소재와 스타일로 평론가인 나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일말의 감동을 선사하다니! 그 감독(윤제균) 참으로 영악하기도 하다. 내년에 대한 전망 등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쯤에서 그치련다.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