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즉시공'에 갈채를
 
 역시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의 위력은 대단했다. 단숨에 전국 1백만 고지를 가뿐히 넘으며 국내 역대 최고 개봉 기록을 달성하는 위업을 이룩했으니까. 그 위력에 가려 충분한 눈길을 끌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지난 주말 박스 오피스의 진정한 승자는 '두사부일체'(2001)를 통해 화려한 데뷔전을 치룬 윤제균 감독의 신작 '색즉시공'이다. 서울누계 17만여 명, 전국 55만8천여 명을 동원한 '풍기문란 섹시 코미디'.
 전국 기준에서 보면 이 스코어는 55만3천여 명의 '광복절 특사'(김상진)를 능가하는 대기록이다. 그것도 스크린 수(이하 서울 기준)에서 무려 24개나 적은 42개로 이룬 기록이다. 객석점유율도 그 화제작의 58%보다 월등히 높은 75%. 내가 왜 '색즉시공'이 진정한 승자라고 했는지는 하지만 '해리포터...'와 비교해보면 분명히 드러난다. 객석점유율이나 스크린 수에서 89%와 87개관인 그 세계적 블록버스터에 단연 못 미치는데도, 일궈낸 결실이기 때문이다.
 지방관객들의 열띤 성원 덕에 가능했겠지만, 따라서 1대 1로 비교하면 오히려 '색즉시공'이 '해리포터...'를 제압한 셈이다. 거기에 등급 요인을 고려해보라. '해리포터...'는 전체관람가인데 반해 그보다 훨씬 불리한 18세 관람가 등급 아닌가. 이만 하면 가히 '집으로...'나 '가문의 영광' 부럽지 않은 '돌풍'이라 할만 하지 않은가. '반지의 제왕'이 가세하는데다 여러 장애요인 탓에 그 돌풍을 지속시키긴 쉽지 않겠지만. 그렇다면 그 돌풍의 주 동인은 과연 무엇일까.
 평론가로서의 속물근성 내지 엘리트 의식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사실 '색즉시공'이 권할만한 문제작이라거나 좋은 영화라고 하긴 곤란하다. 그 속에는 오로지 상업적 성공을 얻기 위해 한없이 천박해지기를 주저 하지 않는 우려할 만한 우리 영화의 어떤 경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 속에는 그러나 워낙 진지한 작품을 좋아하는 데다 한국 코미디 영화의 웃음에의 맹목적 강박증이 역겨워, 평소 코미디를 즐기지 않는 나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대중오락영화로서의 소중한 미덕이 베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영화는 단적으로 화끈하게 웃기고 재미있다. 20대 대학생들의 성적 판타지와 리얼리티가 생동한다. '몽정기'(정초신)에는 미흡한 질펀한 볼거리들도 과하다 싶을 정도로 넉넉하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리듬감도 수준급이다. 그리고 살아 숨쉬는 캐릭터들과 주조연 배우들의 열연 또한 단연 칭찬감이다. 특히 은식 역의 임창정은 발군이다. 극 중 '퀸 카' 은효(하지원)를 향한 은식의 순애보와 임창정의 열연은 경박하다 못해 불쾌할 수도 있을 영화에 어떤 격을 불어넣으며, 더 나아가 일말의 감동마저 일게 한다. 단언컨대 '색즉시공'의 주목할 만한 성공의 일등공신은 망가지기를 마다하지 않고 혼신의 열연을 펼친 임창정이다. 영화는 그 덕에 2001년 국산 상업영화의 최대 성과 중 하나인 '엽기적인 그녀'의 남성·섹시 버전으로 비상한다. 전찬일(영화 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