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트는 새벽, 교통혼잡 뚫고 현장 도착
안전 중무장…공사장엔 긴장감 팽팽

네발로 걷는 안전관리 로봇 'SPOT'
화재위험·유해가스 농도 철벽 감시

풍향·습도 측정 무인기상관측장비 가동
상시 개방 식당엔 한식·퓨전요리 완비

활기찬 현장…오늘도 근로자들 구슬땀

양성옥(가명· 60·인천시 미추홀구 주안동)씨는 새벽 5시에 집을 나선다. 해가 뜨려면 아직도 2시간은 더 있어야 하는 꼭두새벽이다. 자칫 10~20분이라도 출발 시각을 놓쳤다가는 영락없이 낭패를 본다. 목적지를 코앞에 두고 꼼짝없이 출근길 전쟁을 치르기 마련이다. 머리끝까지 짜증을 끓어 올리는 도로 위의 하염없는 기다림은 30분도 좋고, 1시간도 좋다.

양씨는 행여 늦을세라 부지런히 차를 몬다. 연수구 송도국제도시 11공구 허허벌판이 다름 아닌 공사현장에 닿는다. 새벽 5시 반. 사위는 여전히 컴컴하다. 외통인 출입구를 지나 스멀스멀 공사현장 안으로 향하는 출근 차량 틈새에 끼어 주차장에 차를 댄다.

그제서야 양씨는 한숨 돌린다. 공사현장 바로 밖 외길 도로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출근길 지옥을 벗어났다는 안도감이다.

하늘이 어슴푸레 열리는 오전 7시. AI 얼굴 인식기기로 출근을 알린 빨간 조끼의 양씨는 넓은 조회 마당에 한 점으로 서 있다. 빨간 조끼 차림의 신호수만 해도 어림잡아 400~450명이 모여있다. 협력업체 근로자 1800여 명도 나와 있다. 많을 때는 현장 근로자가 3500명에 이르는 날도 있다. 현장 근로자의 품삯으로 하루 3억여 원이 돈다.

▲ 협력사별로 근로자 개인 안전모를 거치하고 있다.

'안전은 여러분들이 일할 때나 일상생활을 할 때 항상 주변에 존재합니다. 일상에서 내 주변이나 동료들 주변에 위험한 것이 없는 지 항상 체크해 주시고 가족들에게 말하듯 편히 소통해 주시길 바랍니다.' 제2 바이오 캠퍼스(연수구 송도동 430 일대 연면적 68만707㎡)를 발주하고 건설 중인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삼성엔지니어링의 안전문화 브랜드 'Safety Around You'의 구호다. 작업장 투입 전 모든 근로자는 'S·A·Y'를 체화하고, 체조로 굳은 몸을 푼다.

동이 트자 양씨도 작업장에 자리한다. 어둠이 걷힌 건설현장은 그의 눈에 경이롭기까지 하다. 마법을 부린 듯 어제까지만 해도 보이지 않던 구조물이 건설현장 여기저기서 불쑥불쑥 솟았다.

▲ 2024년 4월 의약품 시생산을 목표로 제2바이오캠퍼스 선두시설 5공장 건설공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 2024년 4월 의약품 시생산을 목표로 제2바이오캠퍼스 선두시설 5공장 건설공사가 속도를 내고 있다.

제2바이오캠퍼스(5~8공장 생산시설 능력 72만L)의 삼성그룹 차원의 자존심이 걸린 문제다. 선두시설 5공장(연면적 20만6276㎡·생산능력 18만L) 착수를 서두른 이유도 여기에 있다. 2022년 7월 토지매매계약을 시작으로 착공까지 여덟 달 밖에 걸리지 않았다. 5공장은 2025년 4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속도를 낸다고 모든 일이 성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닦인 도로, 힘이 넘치는 엔진, 말썽 없이 극한의 마찰은 견디는 타이어, 하물며 재깍 말 듣는 제동장치까지 모든 요소가 합을 이룰 때 가능한 일이다. 제가끔 역할을 소화하지 못할 때 속도는 조바심이고 허둥거림일 뿐이다.

▲ (사진위 부터)협력사별로 근로자 개인 안전모 거치 선반.한식과 퓨전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상시 개방 기술인 식당. 제2바이오캠퍼스  5공장.
▲ 제2바이오캠퍼스 5공장.

삼성엔지니어링의 속도는 속이 찬 재촉이다.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이 하등 갖춰지지 않은 매립지를 샀어도 아무도 타박하지 않았다. 상수도관을 묻고 수돗물을 끌어들였다. 오수관도 없어 현장 사무동과 식당동에 각 150t짜리 두 개를 설치했다. 처리수의 총질소 농도는 L당 1.96㎎으로 기준치(20㎎/L이하)에 한참 못 미친다. 총인은 0.066㎎/L(기준치 2㎎/L이하)로 처리수를 그냥 바다에 흘려내보내도 거리낌이 없다.

전력이 부족해 지하 전력구를 뚫고 임시 개통해 멀찍이 떨어진 동송도 변전소에서 전기를 끌어다가 쓴다. 지하 터널 공사비만 해도 얼추 50억 원 가량이 들었다. 엄격하다는 경제자유구역청의 경관 기준도 군말 없이 맞춰 심의를 통과했다.

공들여 한다한다 해도 가끔은 오해 섞인 민원에 곤혹스러울 때도 없지 않았다. 바닷가인지라 멀쩡하던 날씨가 꾸물꾸물 흐려지더니 부슬비가 내릴 때가 더러 있다. 레미콘 트럭은 현장 근처에 서 있고, 펌프카가 세워져 있으면 민원인은 “왜 비오는 날 콘크리트를 치느냐”며 야단이다. “기둥이나 주요 구조물 타설이 아니라 바닥 버림 타설이다”라며 설명해도 막무가내다.

그럴 때면 아예 펌프카를 접어 버린다. 괜한 오해를 사지 않으려고 삼성엔지니어링은 아예 풍향·풍속·온도·습도·강수량·기압을 측정하는 무인 기상관측장비를 설치했다.

▲ 한식과 퓨전 요리 등을 즐길 수 있는 상시 개방 기술인 식당.

일단 제2바이오캠퍼스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근로자라면 최고의 대접을 받는다. 늘 열려있는 기술인 식당에서는 한식과 퓨전 요리 등을 골라서 맛볼 수 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네발로 걷는 안전관리 로봇 'SPOT'을 작동한다. 'SPOT'은 특수 용접실 등 밀폐된 작업공간에서 화재위험과 유해가스 농도, 배관누출을 감지한다.

▲ 네발로 걷는 안전관리 로봇 'SPOT'.
▲ 네발로 걷는 안전관리 로봇 'SPOT'.

삼성엔지니어링 김정재 PM은 “삼성엔지니어링은 인천 송도에 삼성바이오로직스 제 1캠퍼스(1~4공장)를 완성하고 2023년 현재 제 2 캠퍼스(5공장)와 글로벌 기업인 Sartorius 송도 캠퍼스를 건설 중이며, 송도 국제신도시가 그야말로 바이오의 성지로 우뚝 설 수 있도록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오후 5시 퇴근길에 나선 양씨의 얼굴은 금세 일그러진다. 제2게이트로 한꺼번에 쏟아진 퇴근 차량은 남동산업단지 쪽 바이오 대로 3차로를 가득 메운다. 게이트에 좌회전 신호가 없는 터라 오직 남동산단 방향으로 우회전해 가다가 U턴 신호를 받아야 한다. 출입구에서 아암대로 사거리로 빠지려면 30여 분은 족히 버려야 한다.

양씨는 뼈 있는 외마디를 내뱉는다. “시민 세금으로 월급받는 자들이여, 신호나 주정차 위반 적발로 딱지 뗄 생각 말고 출퇴근 시간 현장에 나와 볼 지어다.”

/글·사진= 양진수 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