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광덕고개는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 백운동에서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광덕리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다. 해발 600m가 넘고 50여 굽이 급경사가 이어진다. 20여 년 전 고개 정상에서 열리는 장터를 처음 찾아갔을 때 매우 신선했던 기억이 난다. 그 높은 곳에서 경기-강원 이쪽저쪽을 아우르는 장이 서다니…. 나물과 특산물을 파는 이 장터는 '하늘장터'라 했다.

광덕고개 넘는 길은 6·25 때 군사도로로 닦였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캐러멜 고개'라고 불렸다. 고개를 넘던 장군이 운전병에게 졸지 말라며 한 굽이 돌 때마다 캐러멜을 하나씩 주어서 캐러멜 고개라는 현대판 전설도 만들어졌다. 관련 이야기는 <디지털포천문화대전>과 <디지철철원문화대전>에도 소개돼 있다. 산등성이가 낙타(캐멀) 같다고 해서 붙은 '캐멀고개'가 잘못 전해져 캐러멜이 되었다는 이설도 있다. 별생각 없이 들으면 그런가 보다 할 얘기다.

최근 <삼국유사> 연구의 권위자이자, 땅이름 전문가인 신종원 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의 책에서 흥미로운 대목을 읽었다. 신 교수는 '캐러멜고개'라는 명칭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여기던 차에 마을 어르신으로부터 옛날 고갯마루에 미륵불이 있었다는 증언을 들었다. 한반도에 불교가 전래한 이래 미륵신앙은 끈질기게 이어졌다. 길가에 미륵불은 조선시대에도 사라지지 않았다. 미륵불상은 정처 없는 나그네들을 위로하고 보호해주는 미래의 부처님이었고, 길 이정표 구실을 했다.

신 교수는 미륵고개가 일제강점기 들어 일본인 발음 상 '미루꾸고개'로 변형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해방 후 미륵의 존재는 사라지고 '미루꾸'라는 발음은 남았는데, 이 '미루꾸'를 '밀크 캐러멜'의 축약형으로 넘겨짚은 나머지 '캐러멜(캬라멜)고개'로 바꾼 게 아니냐는 게 신 교수의 설명이다. (1990년대에도 캐러멜을 미루꾸라 부르는 세대가 있었다.) 운전병에게 캐러멜 주었다는 웃기는 이야기보다 훨씬 신빙성이 있다. '미륵고개→미루꾸고개→캐러멜고개'는 그러니까 일그러진 식민지근대화의 땅이름버전쯤 된다 할만하다.

오늘날 우리가 쓰는 한자지명 상당수는 일제가 통치편의를 위해 가져다 붙인 경우다. 그 바람에 본디 땅이름에 담긴 풍부한 삶의 자취와 정서를 알아내는 일이 매우 어려워졌다. “지명에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과 신앙, 전통과 풍속, 연희와 물산 등의 실정이 진하게 배어 있습니다.” (<경기도 땅이름의 참모습> 발간사 중에서) 아무래도 옛 땅이름은 미래 문화콘텐츠의 씨앗이 무궁무진하게 내장된 보물창고지 싶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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