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물밀물

조안면은 남양주시 남쪽 끝 면이다. 면 동쪽으로 흘러내린 북한강이 남한강과 만나 두물머리를 이룬 뒤 면 서쪽으로 흘러나간다. 두물머리 바로 앞마을이 열수 정약용(洌水 丁若鏞)의 고향 마재다. 다산(茶山)은 선생이 강진 유배시절에 사용하던 아호이고, 열수는 마치 본관(관향)처럼 썼던 명칭이다. '자찬묘지명'을 보면, 자신을 열수 정약용이라 칭하고 아호는 사암(俟菴)이라 소개했다. 다산을 선생의 대표 아호로 알고 있는 사람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터이다. 하여튼 선생은 집 앞 한강을 '맑은 강(열수)'이라 부르며 평생 사랑했다.

조안(鳥安)이라는 한자를 풀면 새가 편안하다는 의미다. 조안사람들이 소개하는 지명유래도 다르지 않다. 조선시대에 한양으로 가던 선비 박씨가 새소리에 반하고, 물이 좋아 정착한 곳이라서 조안이라 했다 한다.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 수종사로 올라가면서 듣는 새소리는 지금도 일품이다. 게다가 수종사 앞마당에서 내려다보는 두물머리 풍광은 말을 더 보탤 나위가 없다. 열수 선생도 수종사를 즐겨 찾아가곤 했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열수로부터 한 세기 남짓 지나 몽양 여운형(夢陽 呂運亨)도 마음이 답답할 때면 수종사에 올랐다. 몽양은 강 건너 양평군 양서면 사람이다.

수종사에서 같은 송촌리의 용진교회를 지을 때 목재를 보낸 사연도 생각난다. 1914년 용진교회 예배당이 지어질 때 교회장로의 친형이 수종사 주지였는데, 대들보로 쓰라고 목재를 헌납했다는 것이다. 용진교회는 곽안련(Charles Allen Clark) 선교사가 지금의 남양주 양평 광주 일대 선교의 중심으로 삼았던 교회다. 형제간일지언정, 종교 간 대화가 꽉 막혀 있었을 시기에 절과 교회가 서로 도왔다는 기록과 증언이 신선하다. 용진교회는 이웃 능내리 봉안교회의 설립도 도왔다. 봉안교회는 일가 김용기(一家 金容基) 장로가 이상적인 농촌 운동을 시작한 봉안마을에 있고, 일가 선생의 모친이 세웠다.

지난 여름부터 조안사람들이 면 구석구석을 돌아보는 피크닉을 진행해왔다. 경기문화재단 '지붕 없는 박물관' 2023년 사업에 '조안 오래오래'라는 프로젝트가 선정된 덕이다. 공공예술들로화집단을 중심으로 조안의 생태와 역사, 문화유산을 발굴하고, 지역의 특색을 담은 새로운 콘텐츠를 생성하여, 사람과 장소를 연결하는 게 목표다. 문화와 예술로 하나 되는 치유 콘텐츠 아이디어도 좋다. 연면히 이어져온 조안의 숨결들을 올올이 찾아내기를 기원하며 박수를 보탠다.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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