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모든 역량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 달라" 최후 진술

"삼성 글로벌 초일류기업 도약 책무…모든걸 쏟아붓겠다"
▲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회계부정·부당합병' 관련 1심 결심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제공=연합뉴스

삼성은 17일 검찰이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게 징역 5년에 벌금 5억원을 구형하자 침묵을 지키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삼성은 이날 검찰 구형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으나, 내부적으로는 "예상보다 검찰 구형이 세다"며 분위기가 무겁게 가라앉은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우리나라 최고 기업집단인 삼성이 이런 행태를 범해 참담하다"며 중형을 구형하자, 이 같은 검찰의 입장이 재판부의 1심 선고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습이다.

다만 삼성은 그간 이 회장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다고 강조해 온 만큼 선고 시 집행유예로 낮춰지거나 무죄가 나올 가능성에 일말의 기대를 거는 모습이다. 형법상 집행유예는 3년 이하의 징역을 선고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이 회장 측은 그간 양사의 합병이 사업적 필요에 따라 양사 경영진과 당시 미래전략실의 판단으로 진행된 데다, 이 회장이 이를 지시하거나 보고받은 적이 없다고 주장해 왔다.

이 회장은 이날 최후진술에서도 "이 사건 합병과 관련해 저 개인의 이익을 염두에 둔 적이 없다"며 "제 지분을 늘리기 위해 다른 주주 분들께 피해를 입힌다는 생각은 맹세코 상상조차 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 사건 수사 기록이 워낙 방대한 만큼 1심 결과는 일러야 내년 초에나 나올 전망이다.

검찰과 삼성의 항소 가능성 등을 고려하면 최소한 내년까지는 '사법 리스크'가 이어질 수 있다.

재판 결과에 따라 이 회장의 경영 행보에도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회장은 이미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시작해 햇수로 8년째 '사법 리스크'에 발목이 잡힌 상태다.

이 회장은 이번 부당합병 사건으로 2021년 4월부터 이날까지 총 106회 열린 공판에 대통령 해외 순방 동행,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면담 등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 총 96번 출석했다.

이날도 재판에 출석하느라 조부인 고(故)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36주기 추도식에는 불참했다.

이 회장은 앞서 검찰·특검 소환조사만 국정농단 사건(8회)과 삼성물산 합병 사건(2회)으로 총 10회 받았다.

2017년 2월 구속 기소된 뒤 2018년 2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로 풀려나기까지(354일)와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이 선고된 뒤 가석방될 때까지(211일)를 더하면 구속 일수만 565일이다.

재계 안팎에서는 글로벌 공급망 불안과 첨단 기술 경쟁 등 경영 불확실성이 심화하는 가운데 이 같은 사법 리스크로 경영 활동에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는 우려는 꾸준히 제기돼 왔다.

주력인 삼성전자의 반도체 사업은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올해 1∼3분기에만 12조6천900억원의 적자를 낸 상태다. 최근 인공지능(AI) 시장 확대로 급부상한 고대역폭 메모리(HBM) 선점도 SK하이닉스에 밀렸다.

이 회장은 이날 "글로벌 공급망이 광범위하게 재편되고 있고 생성형 AI 기술이 반도체는 물론 전 세계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등 상상보다 빠른 속도로 기술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며 "현재 벌어지는 이런 일은 사전에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는 "이 회장이 매주 재판 준비와 출석 등에 시간을 할애하느라 글로벌 IT 기업들을 따라잡기는커녕 오히려 뒤처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이 작년 10월 회장에 오를 때만 해도 재계 안팎에서는 고 이건희 선대회장의 '신경영 선언'에 버금갈 만한 '뉴삼성' 메시지에 대한 기대감이 컸지만, 1년여가 지난 지금까지 삼성의 대대적인 변화나 체질 개선 등을 이끌어낼 이 회장의 메시지는 나오지 않고 있다.

작년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에는 글로벌 네트워크를 복원하고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지만, 아직까지 두드러진 성과는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 회장은 "제게는 기업가로서 지속적으로 회사의 이익을 창출하고 미래를 책임질 젊은 인재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할 기본적 책무가 있다"며 "이병철 회장이 창업하고 이건희 회장이 글로벌 기업으로 키운 삼성을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시켜야 하는 책임과 의무가 있다는 것을 늘 가슴에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런 책무를 다하기 위해 제가 가진 모든 것을 쏟아붓겠다"며 "저의 모든 역량을 온전히 앞으로 나아가는 데만 집중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기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재판 결과에 따라 그룹 컨트롤타워 부활 여부, 이 회장의 등기임원 복귀 시점 등도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 몇 년은 삼성에 있어 '잃어버린 몇 년'"이라며 "이참에 사법 리스크를 털어내야 삼성답게 혁신적인 경영을 하고 미래 준비 모드로 전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진수기자 photosmith@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