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재 커녕 '민간의 일' 치부…사태 더 키웠다

이송·구역 민원 해결 의지 無
돌아온 답은 '업체 설득 수준'
오히려 피해 접수사실 알려
병원과 대립 최고조 부채질

호소해도 역시나…여론 형성
병원 집단행동 포기 '한 원인'

업무 전담 1명…턱없이 부족
불법행위 '특감'도 단발 그쳐

경기도가 지역에서 일어난 사설 구급차 업계 담합 의혹과 영업구역 다툼 등의 문제를 고발한 민원을 받고도 특별한 행정 조치 없이 종결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직접적인 중재는커녕, 고발 사실을 업체에 알려 의료계-업계 간 갈등을 더욱 꼬이게 했다. 도의 구급차 관리 시스템은 대폭 축소된 지 오래다.

▲부당함 알리는 호소에 “방법 없다”

24일 인천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21년 11월 경기도에 성남지역 사설 구급차 업체 계약 강요, 이송거부 등에 대한 해결을 요청하는 취지의 민원이 공식 접수됐다. 자신을 병원 종사자라고 소개한 민원인은 “매월 계약금 형식으로 납부해야 이송해준다고 한다. 응하지 않으면 이송해주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한다”며 “환자 응급상황이 생겼을 때 정말 이송을 거부했고, 119에 신고해 응급실로 이송했다. 응급환자 응급처치보다 업체 배차가 더 힘들다”고 호소했다.

또 “다른 이송업체 알아보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성남·용인·수원 업체들도 눈치를 보며 배차해주지 않는다”는 내용도 덧붙였다. 특정 업체가 아닌 업계 전반이 참여했을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도는 해결하지 않았다. 규정이 없어 개입할 수 없다는 이유다.

한 달 뒤인 12월 병원이 받은 도의 답변서를 보면, “구급차 운용위탁에 대한 기준·절차에서는 계약금에 관한 사항은 별도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고 적혀있다. 도는 “해당 업체에 응급상황에서 신속한 이송에 지장 받지 않도록 의료기관의 민원 해결에 협조하도록 요청했다”면서 업체를 설득하는 수준에서 마무리했다.

의료계에서는 도의 이 같은 행정이 대책을 내지 않은 점도 불만이지만, 사태를 오히려 키운 꼴이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도가 중재 역할을 하지도 않은 채 업체에 피해 접수 사실을 알리면서 양측 대립 분위기가 더욱 고조됐고, 현재의 요양보호사 파견 사업 등의 편법만 양성했다는 것이다.

수개월 간 구급차 배차를 받지 못했다는 A병원 관계자는 “병원이 집단행동을 포기한 원인 중 하나가 도의 미지근한 대응이었다”며 “어차피 이렇게 호소해도 해결되지 않는구나 하는 여론이 형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시장 경제에서 이상한 징조가 있으면 즉시 바로 잡아야 했지만, 도는 의지가 없었다”며 “타이밍을 놓치니까 피해를 증언하려는 병원도 줄어들고, 이쪽에서 협박 아닌 협박식의 거래가 통용되는 상황에 이르렀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영업구역이 충돌한 업체 간 운영 방해, 고소·고발 등이 벌어진다는 민원 역시 도가 2021~2022년 수차례 파악했음에도 '민간의 일'로만 치부해 넘긴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B구급차 업체 관계자는 “공무원한테 피해를 받고 있다고 말하면 돌아온 답은 방법이 없다는 거다”며 “그리고 제대로 유권해석도 해주는 사람도 없고 인사이동으로 자리가 바뀌기도 하니까 도움도 못 받고 지쳐버렸다”고 말했다.

도는 상급기관 유권해석이나 경찰 수사 의뢰도 하지 않았다. 인천일보가 지난 15일 공정거래위원회를 통해 받은 의견을 보면, 업자의 부당한 공동행위 의심 사례는 별도 조사가 가능한 사안이다. 의료계와 업계를 한자리에 모아 의견을 나누게 하는 노력도 없었다.

 

▲'일당백 인력'에 관리·감독 실효성 도마 위

사설 구급차 관리를 전적으로 맡고 있는 지자체의 관리·감독은 허술할 수밖에 없다. 경기도는 인구 증가에 따라 구급차 업계 규모도 커지는 추세이지만, 점검 인력은 제자리였다.

구급차 업무를 전담하는 도청 공무원은 1명이 전부다. 정기 점검 시 응급의료지원센터에서 지원해주는 인력도 많아야 2명이다. 통계상 도내 구급차 업체는 2018년 15개에서 올 9월 기준 33개로 6여년 동안 2배 이상 급증했다. 각종 문제를 다루기엔 턱없이 부족한 인력이다.

이 소규모 인력이 점검에 나서면 모든 업체 구급차의 출동·처치 기록서류, 영상(블랙박스) 기록, 차량 형태·내부장치, 의료장비·구급의약품 등을 살펴보며 기준 위반 및 위법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또 전담 공무원은 점검뿐만 아니라 운영 허가, 휴업·폐업·재개업, 지위 승계 등의 업무처리도 필요하다. 민원마다 현장 조사를 할 수 없는 여건이다.

특별감사가 단발성에 그친 부분도 취재 결과 확인됐다. 지난 2018년 9월 당시 이재명 경기지사는 사설 구급차의 만연한 불법행위를 잡겠다며 정기 점검 외에 특별감사를 지시했다. 도는 특별사법경찰단 등을 포함해 42명의 점검단을 꾸리고 '추적조'까지 편성해 불시 점검에 나섰다.

특별감사를 통해 9개 업체에서 허가지역 외 영업 등 불법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관련 조직은 해체됐고, 특별감사와 같은 행정력 가동은 단 한 번으로 끝났다.

경기도 관계자는 “2018년도 특별감사는 교통법규 위반에 대해 중점적으로 한 번 실시됐고, 이후에는 정기 점검만 하고 있다”며 “현재 구급차 담당 공무원은 한 명뿐이다. 점검 나갈 땐 응급의료지원센터에서 지원해주지만 부족한 상황”이라고 했다.

/특별취재팀(김현우·이경훈·최인규·정해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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