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를 두고 이뤄지는 이권 다툼과 거래. 최근 경기지역 일부 민간·공공병원에서 이 같은 의혹이 포착됐다. 법이 정한 비용 외에 돈을 더 주지 않자 구급차가 병원을 찾아오지 않았고, 환자·보호자들이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는 믿기 어려운 주장이 쏟아졌다. 부당한 계약을 강요받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대체 현장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구급차 계약’이 두려운 병원
22일 인천일보가 취재한 성남지역 요양병원 실태를 보면, 최근 A사설 구급차업체는 ‘간병인 파견’을 골자로 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사업은 병원에서 업체 소속 간병인을 고용하면, 업체는 병원의 환자 이송을 하는 업무상 협력구조의 형태다. 업체로부터 계약을 직접 제안받았거나, 사업 내용을 익히 알고 있는 지역 내 요양병원은 10곳이 넘는다.
A업체는 사업을 위해 통상 구급차 업체가 보유하는 ‘응급환자 이송업’, ‘응급처치 교육업’ 등 업종 말고도 ‘유료직업 소개사업’을 추가로 사업자로 등록했다. 의료계와 업계는 모두 이 상황이 비상식적이라고 지적한다.
환자 치료가 주기능이 아닌 요양병원은 구급차를 의무적으로 보유하지 않아도 된다. 구급차 위탁계약을 맺지 않고, 환자·보호자와 의료진이 지역 업체에 전화 걸어 호출하는 체계다. 위급한 환자가 발생하면 가장 빠르게 올 수 있는 구급차를 선택해야 하는 병원은 지역 다수 업체와 연락망을 가동하고 있다.
성남의 병원들은 이런 사업이 두렵다고 증언한다. 업체와 계약을 하지 않을 시 구급차 배차를 받지 못하는 불이익이 우려된다는 것. 일부는 실제 계약을 검토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B요양병원 관계자는 “계약을 맺으면 일대일 매칭, 즉 그 업체의 독점 하에 구급차가 운영된다”며 “하나의 선례가 돼서 다른 업체도 비슷한 사업을 내밀 수도 있다. 안 받아주면 환자 이송이 마비가 되니 울며 겨자 먹기로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C요양병원 관계자도 “환자를 걸고 돈을 더 받으려는 행위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고 했다.
공공병원은 치솟은 구급차 위탁비용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8월 경기도의료원 이천병원(이하 시 의료원)은 예년보다 2배 가까이 인상된 월 300만원 이용 수수료를 부담하게 됐다.
이 부분을 놓고는 ‘독과점’ 소문이 돌았는데, 공교롭게 A업체가 거론된다. 의료원 측은 세 차례 견적조사 및 입찰을 거쳤으나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유일하게 계약 의사를 내비치면서 비용도 올려 부른 A업체가 결국 수주했다. A업체는 2021년에도 의료원과 위탁 관계에 있으면서 ‘연장 시 비용 인상’을 요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시 의료원이 수립한 계약순위로는 기존과 비슷한 수준의 비용과 출동 거리가 가까운 접경지역(광주·여주 등) 업체가 우선이었다. A업체는 한 지역을 더 지나야 하는 성남시에 위치한다. 의료원 측은 지역에서 원인을 알아보던 중 ‘업체 간 갈등이 있어 입찰이 어려울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시 의료원 관계자는 “업계 안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가 알 수 없으나, 안다고 해도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며 “구급차 위탁비용이 비정상적으로 솟구치거나 지역 업체 입찰 포기 등의 현상이 나중에도 있을지 걱정”이라고 전했다.
▲환자가 불러도 오지 않은 구급차?
취재팀은 돈 문제와 연관된 구급차 논란을 깊이 들여다보기 위해 제보 내용과 단서가 될만한 과거 자료·기록 등을 모았다. 그 결과 2021~2022년 성남지역에 유례없는 ‘구급차 대란’이 발생한 사실을 확인했다.
2021년 10월, A업체 명의로 된 공문이 한 요양병원 측에 전송됐다. 공문은 이송처치료가 유류대, 인건비 등 물가상승을 반영하지 못해 어려움이 있다는 설명과 함께 협약을 요구한다. ‘회사는 협약된 병원에 한해 지속적인 환자 이송을 유지하기로 결정했다’는 선언 성격의 문구도 적혀 있었다. 이송처치료는 구급차가 환자를 이송하고 받는 법적 수가를 의미한다.
A업체가 제시한 협약 조건은 병원이 돈을 더 내라는 것. ‘매달 허가 병상 수 곱하기 8000원’이라는 계산법과 시행일을 11월 1일부터로 명시했다. 만약 200병상의 병원이라면 매달 160만원 가량을 업체에 납부하라는 논리다. 업계 내 고액 이송료를 받다가 당국에 적발된 경우는 종종 있어도 아예 환자를 구실로 별도 요금을 청구하는 움직임은 처음이었다.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은 구급차 업체가 응급환자 이송 요청에 응해야 하는 조항을 포함하고, 이송처치료 외 비용 징수도 금지한다. 다만 협약·계약을 체결하기 위한 ‘민간 거래행위’는 법 적용을 피할 수 있어 언제든지 환자 이송을 내건 일종의 ‘갑질’이 가능하다.
병원은 반발하고 나섰다. 특히 구급차 계약 자체가 금시초문인 약 7곳의 요양병원 관계자들은 공문을 받은 날 즉시 서로 연락하며 대응을 논했고, 일부는 10일 뒤쯤 모여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후 협약을 거절한 병원에는 구급차 배차가 정말로 끊겼다는 게 복수 관계자들의 주장이다. A업체만 아니라 다른 업체도 호출을 거절했다고 한다. 대란은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약 8개월 계속되다 마지못해 계약에 도장을 찍은 병원이 생기며 마무리됐다.
A업체 대표는 경기도 이송업체가 모여있는 협회 단체를 이끈 간부로도 활동했다. 2018년 이재명 전 경기지사가 재임 기간 구급차 불법 소탕하겠다며 특별감사에 나서자, 일선에서 반발하기도 했다.
의사단체에서는 당시 이윤을 위해 A업체의 방침으로 업계가 뭉치는 등 조직적인 담합을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 성남시의사회는 2022년 1월 ‘환자 이송과 관련, 부당한 금전적 요구를 하거나 응하지 않을 시 이송거부 등 다양한 피해 사례가 접수되고 있다’는 내용의 공문을 모든 병원에 배포한 바 있다. 의사회는 수개월 간 실태조사에서 7건 가량 피해를 정식 확인했었다.
2021년 12월에는 계약강요 등에 대한 도움을 호소하는 민원이 도에 접수됐다. 소방서 119구급대가 보관한 일지도 당시 어수선했던 정황을 뒷받침한다.
인천일보가 확보한 소방 내부 자료를 보면, 성남 중원·분당 소방서는 2021~2022년 요양병원으로부터 327건에 달하는 환자 이송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20~30건 정도였던 예년과 비교해 2021년 107건, 2022년 220건으로 최대 7배 이상 급증했다. 호흡곤란·의식저하 등 치료가 급한 환자들도 다수 포함됐다. 119구급대는 병원 밖의 위급환자를 주로 책임져 요양병원에 출동할 일이 극히 적었다. 사설 구급차가 그 시기 요양병원에 가지 않아 119구급대가 업무를 대신했을 가능성이 컸다는 분석이다.
‘구급차 전쟁’을 또렷이 기억한다는 D요양병원 관계자는 “여러 병원이 119구급대에 도움을 요청하고 난리였다. 구급차가 오지 않은 상태에서 환자가 사망한 일도 있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업체들이 보호자들의 전화를 받으면 ‘그 병원은 우리랑 계약이 안 돼 있다’는 말도 해 병원을 욕하는 분들도 있었다”고 토로했다.
시 의사회 관계자는 “환자 이송을 조건 수락 하에만 한다는 건 시스템에 맞지도, 직업적 윤리에도 맞지 않아 의사들의 항의가 빗발쳤다”며 “환자가 우선이 아닌 구급차가 우선이 되는 기이한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한 생존권 보장행위” 반박
반면 A업체 측은 제기되고 있는 부정적인 의견을 전면 반박했다. 부족한 이송처치료 탓에 대부분 업계가 만년 적자에 내몰린 만큼, 그동안의 일은 타당한 이유가 있으며 적법했다는 것이 업체의 해명이다.
A업체 대표는 “식당을 예로 들면 물가 상승률에 따라 마진을 높이기 위해 금액을 조정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업종이 아니고 정부가 정한 수가만 받는다”며 “병원이 1년에 2~3%라도 수가가 오른다면, 이 업종은 10년 이상 제자리다. 10년 사이 최저임금만 5000원대에서 거의 떠블(두 배)을 바라보고, 차량 감가율은 40% 이상 오르는 등 어려움이 있어 합법으로 위탁료를 받으려고 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200병상 계산해서 160만원 더 받아도 인건비도 안 나온다. 마이너스(적자)를 버틸 힘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느냐”며 “임금이 부족해 노동자들이 파업하듯이, 비용이 안 맞아서 그 금액에 못한다고 하는 게 문제가 되느냐”고 덧붙였다.
수익 챙기기에 급급한 병원, 무관심한 정부가 원인을 제공한 것이란 입장도 냈다.
그는 “일은 똑같아도 대학·종합병원은 차라리 위탁료를 준다. 요양병원은 한두 번 호출하면서 구급차 대기는 해달라고 한다. 이게 오히려 불공정한 것”이라며 “요양병원은 차량을 한 대 운영해도 달에 3000만 원 유지비가 든다. 자기네는 타산이 안 맞아서 하지 않고 우리에게 무조건 해달라는데 우리도 타산이 안 맞는다”고 설명했다.
A업체 대표는 “병원이 없었던 문화니까 아깝게 생각하지만, 간병인 파견 사업은 우리가 수익 창출할 수 있고 병원은 이용료 없이 이송서비스를 받는 것”이라며 “(제도가) 바뀌어야 할 게 너무 많다. 복지부에 아무리 요청해도 바뀌지 않는 데다 신경도 안 쓴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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