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런스 블록, 작가들에 글 제안…17편 탄생
푸른 저녁·뉴욕의 밤·선로 옆 호텔 등 눈길
언제였을까.
'밤을 새우는 사람들(1942)'을 접했을 때 붕 뜬 내게 뭔가를 얹은 듯 고요하고 삭막했다.
불 꺼진 거리에 빛을 품은 식당. 꽤 늦은 시간일 텐데 등 돌린 한 남자는 식당에 앉아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맞은편 두 남녀는 꽤 진지한 듯 보이지만 어딘지 불안감이 느껴진다. 식당 주인은 두 남녀와 대화를 나누지만, 손의 움직임과 시선은 엇갈린다. 그 언제부터 지금껏 에드워드 호퍼 작품을 한 점씩 찾아봤고, 어딘지 어색한 도시인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빛 혹은 그림자>는 독특한 책이다.
이 책은 로런스 블록이 에드워드 호퍼 작품 18점을 선정하고 작가들에게 그림에 얽힌 글을 써 줄 것을 제안해 엮인 17편의 작품으로 탄생했다. '케이프코드의 아침'은 끝내 작가를 찾지 못해 작품집에 수락되지 못했지만, 책의 표지가 돼 더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다. 어둡게 조명하나 켜 놓고 누군가 권한 몽롱하고 그림자 같은 시가렛에프터섹스 음악에 맞춰 <빛 혹은 그림자>를 읽어냈다.
며칠 전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를 보고 온 후라 더욱 <빛 혹은 그림자>가 전하는 감동은 배가 됐다.
로런스 블록은 “호퍼는 삽화가가 아니었고 서사화가도 아니었다”고 전한다. 그렇게 “이 단편소설들은 장르가 다양하거나 혹은 아예 장르가 없다”며 “작가들 개개인의 걸출함, 그리고 그들이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것”이라고 썼다.
책을 읽으며 무던히도 에드워드 호퍼의 작품을 뜯어보게 됐다.
'푸른저녁(1914·왼쪽 사진)'을 보며 한 테이블에 함께 앉은 민머리 피에로와 군복을 입은 남자, 사선에 앉은 턱수염 가득한 남자의 대화 속에 끼어들기 위해 애썼고, 그들과 관계있을 법한 한 여성이 바라보는 멍한 시선의 끝을 상상해봤다. 이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단편을 써낸 로버트 울렌 버틀러는 결국 스릴러를 만들어냈다.
익숙한 작가 스티브 킹은 '뉴욕의 방(1932)'이란 작품의 복제품을 갖고 있다. “이 그림이 저에게 말을 걸기 때문이죠.”라는 스티브 킹, 제목이 바뀐 '음악의 방'으로 단편을 썼고, 그답게 대공황 당시 뉴욕인의 당연한 듯 잔인한 일상이 탄생했다.
에드워드 호퍼전에서 가장 많은 시간 내 발길을 붙잡았던 '도시의 지붕들(1932)'은 '목사의 소장품'이란 작품으로 해석됐다. 에드워드 호퍼의 대가답게 게일 레빈의 이 작품은 사실인 듯 착각에 빠지게 한다. 혹은 사실을 수 있다. 도시를 사랑했지만, 남이 보지 못한 도시의 이면과 외롭고 지친 도시인을 그려낸 에드워드 호퍼답게 낮이 기울 때쯤 도시의 지붕에는 굴뚝과 여러 구조물이 엉기듯 서 있지만 외따로다.
영화 '본 콜렉터'의 저자 제프리 디버가 '선로 옆 호텔(1952)'을 모티브로 창작한 '11월10일의 사건'은 한 편의 첩보영화를 탄생시켰다. 어떻게 호텔 방에서 창문을 응시하는 중년의 남자와 그 곁에 책을 읽고 있는 여성에게서 그런 발상의 내용을 끄집어낼 수 있을까.
'밤의 창문(1928)'은 묘하게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에서 조너선 샌틀로퍼는 히치콕 영화 '현기증' '사이코'를 재연해냈다.
작품을 옮긴 이진은 “화가에게 그림이 찾아오는 방식이 다양하듯, 작가에게 이야기가 찾아오는 방식도 다양하다”며 “한 점의 그림으로 그들의 영감을 제한해도 걸출한 작가들은 그 속에서 또 하나의 우주를 읽어낸다”고 했다.
/이주영 기자 leejy96@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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