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지원사업, 내 몫은 없네

주택·생활비·정신건강진료비 등 제공
정부·지자체 요구 기준 맞추기 어려워

지난해 노동자 지원사업 13.5% '불용'
2018년 시행 청년연금 자격 유지 41%
150만 경기지역 청년 중 4만명만 수혜

'통장을 만들면 지원금을 얹어서 준다', '안정적인 주택을 제공한다', '생활비를 주기적으로 준다', '정신건강 진료비용을 지원해준다', '복지 포인트를 지급한다' 등등등.

수원시 사는 청년 박모(32)씨는 최근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휘황찬란한 청년 지원 정책을 쳐다만 본다. 모두 소득이 초과하거나, 자격 기준이 맞지 않아 박씨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정책은 단 1개도 없다. '해외 연수를 보내준다'는 정책은 자격도 맞고 자기 발전 측면에서 관심이 가지만, 당장 노동 소득이 끊기면 월세도 못 내는 등 생계에 지장이 있는 독립 청년이 이용하기에 비현실적이다.

박씨는 “300만원 좀 넘게 벌면서 자취하고, 집이 잘사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기준이 절벽같다”며 “오히려 재산적으로 여유로워 아르바이트 정도 하면서 지내는 청년들이 받을 수 있는 게 많을 거 같다. 나는 통신사가 출시한 '청년 요금제'를 쓰는 게 전부”라고 말했다.

청년 정책은 나날이 발전하고 있지만, 대상자인 청년들의 삶은 궁핍해지고 있다. 2015년에는 경제적 압박으로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3포세대'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내 집 마련, 인간관계까지 포기한 '5포세대', 이를 넘어 꿈과 희망까지 없다는 '7포세대'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0년 20대 청년 사망자 2명 중 1명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망자 2706명 가운데 54.3%인 1471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유는 무엇일까. 정부가 최초로 시행한 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가늠할 수 있다. 국무조정실이 올해 4월 낸 청년 삶 실태조사를 보면 1만5000가구 중 33.9%가 최근 1년간 번아웃(탈진)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진로 불안 37.6%, 업무 과중 21.1%, 일에 대한 회의감 14.0%, 일과 삶의 불균형 12.4% 순으로 나타났다.

부모와 함께 사는 청년 중 67.7%는 아직 독립할 구체적인 계획이 없다고 응답했는데, 가장 큰 이유로는 '경제적 여건을 갖추지 못해서'라는 응답이 56.6%로 가장 많았다.

2016년 전국 최초로 '물적 지원'이 아닌 '자기 개발'에 초점을 맞춰 청년 지원 공간 및 정책을 추진한 수원시는 주기적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 청년이 종이에 고민을 적고 있다./사진제공=수원시
2016년 전국 최초로 '물적 지원'이 아닌 '자기 개발'에 초점을 맞춰 청년 지원 공간 및 정책을 추진한 수원시는 주기적으로 청년들의 고민을 듣는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한 청년이 종이에 고민을 적고 있다./사진제공=수원시

아쉽게도 이런 청년들의 고민을 덜어줄 정부 및 지자체의 지원 정책은 대상자 선정 기준을 일률적으로 두고 있다. 예를 들면 중위소득이 몇 퍼센트인지, 건강보험료 월 납부액은 얼마인지부터 중소기업 재직 여부와 직종 등에 부합하는 청년들을 돕고 있다. 만약, 가정이 찢어지게 가난한 현실에서 투잡·쓰리잡을 뛰어가며 월 400만원 정도의 소득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청년이 있다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은 눈 크게 뜨고 찾아봐도 없는 것이다. 대기업에서 일하지만, 소득이 그다지 많지 않은 청년도 마찬가지다.

이호동 경기도의회 의원이 조사한 결과, 한 해 예산 730억원이 넘게 투입되는 청년 노동자 지원사업은 2022년 기준 13.5% 미집행 잔액이 발생했는데, 원인이 '지원자격 유지 실패'였다. 자격 유지율이 62.2%다.

또 일하는 청년 복지포인트 사업의 경우 2021년 2만1531명을 선정해 1만6763명인 77.9%만이 자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2018년 4532명이 신청한 청년 연금사업의 경우 자격 유지자는 1876명인 41%에 불과했다.

이 의원은 “150만 경기도 청년 중 지원 수혜를 보는 비율이 2.7%인 4만명에 불과하다는 게 문제의 본질”이라고 지적했다.

'흙수저'에서 성공한 대표적인 정치인으로 꼽히는 김동연 경기지사가 대대적으로 추진 중인 '기회 정책'의 경우, 스스로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청년을 돕겠다는 의미를 내재하고 있다. 김 지사가 앞으로 기존 정책의 틀을 얼마나 깨부술 수 있을지 관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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