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가을 중부고속도로 남이천IC(나들목) 건설을 두고 특혜의혹이 일었다. 2004년부터 5년여 동안 경제적 타당성이 없다며 번번이 거부되던 나들목이 2010년 들어 갑자기 설치 쪽으로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다. 나들목을 원했던 주민들은 반겼지만, 비판적으로 보는 측에서는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 나들목이 생기면 이명박 당시 대통령 일가의 선영이 가까워지고, 대통령 형들(이상득, 이상은)이 관계된 목장이 고속도로 덕을 크게 볼 수도 있다는 점을 짚었다. 집권 초부터 만사가 형을 통해 이뤄진다는 신조어 '만사형통(萬事兄通)'이 등장했고, '다스'와 BBK의혹이 여전했던 터라 의혹은 일파만파로 번져 나갔다.
권력은 언제든 도로를 휘게 하는 힘이 될 수 있다. “그동안 합리적인 이유 없이 도로나 철도, 댐 등 대형 공공사업 계획이 중도에 마구 변경된 사례들은 비일비재하다.” (<경향신문> 2003년 11월14일자 사설의 한 대목) 사설이 쓰인 계기는 “사정기관 전직 고위인사가 부하를 통해 압력을 넣어 선영(先塋) 부근을 지나도록 예정된 민자고속도로 노선을 변경토록 했다는 첩보에 따라 검찰이 수사에 나섰”기 때문이다.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사례는 훨씬 더 많다. 권력과 부가 개입해 휘거나 굽지 않은 도로가 있기는 했던가?
이를 막으려면 절차를 투명하고 엄격하게 지켜나가는 수밖에 없다. 국가단위 도로기본계획을 일찌감치 수립하고, 예비타당성 검토를 신중하게 진행하고,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혹여 오해의 소지는 없는지 다시 확인하고…. 그런데도 의혹이 제기된다면? 솔직하게 해명하는 게 최선이다. 떳떳하다면 조만간 시시비비가 가려지게 마련이다. 7년이나 진행해 온 지역 숙원 도로개설을 장관 말 한마디로 백지화하는 일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백지화 선언이야말로 진짜 정쟁을 격발하는 방아쇠일 터.
지리학자 김이재 교수는 자신의 저서 <부와 권력의 비밀, 지도력(地圖力)>에서 “지도를 읽는 자가 앞으로 100년을 이끌어간다”고 주장했다. 미래를 통찰하는 혜안을 기르자는 신선한 발상이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은 신년에 달력을 보는 사람은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며, 지도를 펼쳐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런데, 세계지도를 펴놓고 부와 권력의 흐름을 읽는 힘을 기르는 일 못지않게 지역 지도를 바꾸려는 부와 권력의 미시적 메커니즘을 감시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건 민주주의 체제에 존재해서는 안 되는 '역린'과 무관한 의무다.
/양훈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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