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나에게는 가을 서리처럼, 다른 사람에게는 봄바람처럼 대하라.”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항상 마음속에 ‘지기추상 대인춘풍(知己秋霜 對人春風)’을 품고 산다. 지난 1980년 12월 행정고시에 합격해 재정부 공무원을 시작으로 벌써 5번째 공직을 시작하게 됐다. 그는 경기도교육감 자리를 경기도 유권자와 학부모가 준 ‘혜택’이자 ‘명령’으로 여기겠다는 각오다.

 

▲유도소년에서 재무부 공무원으로 꿈많은 유년·청년시절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당선인은 1956년 경기도 성남 판교지역에서 태어났다.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당시만 해도 시골 중 시골이었던 판교에서 자라났다.

어린 시절 임 당선인은 만능 스포츠맨이었다. 100m 달리기 최고 기록이 12.7초였고, 멀리뛰기도 5m를 기록했다. 탄탄한 체격에 운동감각으로 유도에도 소질이 있었다.

▲ 성남 낙생초 은사님과 함께.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낙생초등학교와 양영중학교를 나온 뒤에는 서울로 유학을 떠났다. 명문고등학교로 꼽히는 경동고등학교에 입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그러나 첫 시험에서 반에서 46등을 하고 ‘당장 유도를 때려치우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공부하겠다는 마음으로 3주간 이어진 선배들의 얼차려를 견뎠고, 유도부에 나온 뒤에는 공부에만 매달렸다.

재수 끝에 서울대에 입학한 후에는 깊은 고민 끝에 경영학과를 택했다. 그러다 대학교 4학년이 되자 실력을 확인해보겠다는 포부로 행정고시에 응시해 1차에 합격하기도 했다.

다만, 장남으로서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하루라도 빨리 집안 경제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에 금융권을 두드렸다.

그렇게 은행에 들어갔지만 한국의 위상을 확인하는 데 그쳤다. 경제적 후진국인 한국의 현실을 보면서 경제적 약소국의 서러운 처지를 느꼈다.

금방 은행을 그만두고 행정고시 2차에 도전했다. 절간처럼 조용한 시골집 뒷방에서 6개월간 책과 씨름하면서 인생 항로의 커다란 변화를 맞이했다.

2차 시험 합격 후 공군 장교로 군대생활을 하던 1984년 3월 11일 서울 시내 한 커피숍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9살 군인과 회사에 다니던 24살의 아가씨는 만난 지 77일 만에 백년가약을 맺었다.

▲ 1984년 신혼여행으로 떠난 제주도에서 아내 권혜정씨와 함께.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1987년에는 판교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고 둥지를 튼 후 지금까지 성남시민으로 살고 있다.

 

▲IMF외환위기로...결심한 새로운 길

임 당선인은 재무부 사무관이 돼 일벌레로 살았다. 출근은 새벽에 했지만, 퇴근은 언제 할지 모르고 지냈다.

그러다 1996년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객원연구원 신분으로 영국 옥스퍼드로 2년간 유학을 떠나게 된 것.

아내와 초등학교 4학년, 5학년 두 딸과 함께 처음 오른 외국행 비행기에는 국어부터 도덕, 사회, 역사 등 한국 교과서가 가득했다. 아이들은 낮에는 현지 학교에 다니고 집에 오면 한국 책을 공부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결혼 12년 만에 찾아온 정시출근 정시퇴근의 삶이었지만, 상황은 꿈처럼 사라졌다.

1997년 말 IMF 외환위기가 닥치자 6개월 먼저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대통령 경제비서실에서 일하며 은행권 구조조정을 했다. 그는 뼈를 깎는 고통이라 기억한다.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고 해도 피부에 와닿는 현실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탄탄대로로 열려 있는 공무원의 길을 외면하고 정치입문의 도전을 시작했다.

2000년 고향인 분당에서 제16대 국회의원으로 선거에 출마했다. 특별한 전략이나 거창한 슬로건은 없었지만, ‘열심히 일하겠다’는 진심은 그를 국회로 이끌었다.

▲ 지난 2000년 제16대 총선에 승리해 국회에 진출한 후 당선 인사.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한나라당 국회의원으로 받은 명예 목포시민

임 당선인은 토박이 경기도민이자 성남시민이지만, 2004년 제2의 고향을 가졌다.

지역주의 타파를 위해 당시 여당의 텃밭인 전라남도 목포를 제2의 지역구로 계속해 찾았다. 처음에는 미덥지 않은 시선을 보이던 목포시민들도 점차 마음을 열었다.

목포 관련 예산 신청서를 들고 경제부처 공무원을 설득하고,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 의원들에게도 예산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목포 공무원들이 서울에 올라오면 자신의 지역구 의원을 찾듯 임 당선인을 찾았다.

그렇게 임 당선인은 1897년 목포 개항 이후 여섯 번째 명예 시민증을 받았다.

 

▲40년 이상 살아온 공직자의 삶...“공적 책임 한시도 잊어본 적 없다”

▲ 대통령 실장 시절 임태희 당선인.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임 당선인은 40년 이상을 공직자로 살아왔다. 재무부 공무원, 국회의원, 고용노동부장관, 대통령 비서실장을 거치며 벌써 60대 중반의 나이가 됐다.

그는 경기도교육감으로 다섯 번째 공직을 시작하며 유권자와 학부모가 준 ‘혜택’이자 ‘명령’을 잊지 않고 자신의 인생을 하늘에서 비디오로 찍고 있다고 생각하며 산다는 각오다.

임 당선인은 “경기교육의 불편했던 진실을 하나하나 구석구석 잘 살펴

앞으로 4년간 지난 13년 동안 누적된 문제를 풀어나가겠다”며 “임태희가 가진 모든 경험과 노하우를 경기교육의 미래를 위해 쏟아붓겠다”고 밝혔다.

▲ 임태희 당선인. /사진제공=임태희 캠프

/김중래 기자 jlcomet@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