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 희 연(제물포중 교사)

 “어! 퇴근시간이다.”
 다섯 시가 훨씬 넘은 시간이다. 도서부 아이들이 오늘도 일이 많아서 집에 갈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도서실에 머물러 있다. “퇴근시간?” 의아해하며 내가 묻자 저희들이 집에 가는 시간이 언제나 선생님들 퇴근시간과 같다고 농담 섞인 투정을 부린다. 일 때문에 늘 붙잡아 둔 것이 미안하기도 하다.
 “자, 이제 집에 가자. 너무 늦었다.”
 도서실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오며, 다시 한번 도서실을 둘러본다. 아직은 내가 꿈꾸고 있는 도서실의 모습에 비하면 정말 휑한 곳이다. 여기저기 고쳐야 할 곳도 많고 채워 넣어야 할 것들도 많다. 그렇지만 지난해에 비해 한결 넓어지고 여러가지 편의시설이 갖추어진 도서실은 늘 나와 아이들을 설레게 만든다.
 본관 4층 중앙에 교실 반쪽보다 더 작은 방 한칸, 모든 벽을 차지하고 있는 서가들과 꽂을 자리가 없어 서가 위나 창틀에 대책 없이 얹혀져 있던 책들과 쌓여있는 먼지…. 이것이 지난해 도서실 업무를 처음 맡으며 내가 접한 제물포중 도서실의 모습이었다. 서가에는 온통 낡은 책들이 꽂혀 있어 새로 들어온 책들은 아예 한 쪽으로 밀려나 쌓여 있었고, 아이들이 열 명 남짓 몰려오면 서 있을 곳조차 없는 비좁은 공간에 앉아서 읽을 수 있는 열람 책상과 의자도 없고 단지 대출과 반납만 가능한 곳. 과연 이곳이 20년이나 된 학교의 도서관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열악했다.
 전에 있던 도서실보다 3배 정도 넓은 공간에 질서 있게 배열된 서가와 양쪽 창틀 밑을 차지하고 있는 낮은 서가들, 가지런히 놓여 있는 열람용 책상, 대출용 컴퓨터 한 대와 프린터, 한 쪽 구석을 차지하고 있는 온풍기와 냉방기, 5월 내내 공들여 꾸민 도서실 게시판…. 아직 제대로 갖춘 도서실의 모습이라고 말하기엔 턱없이 부족하지만, 이제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꿈꾸는 학교도서관의 모습은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언제나 열려있는 공간, 아이들이 언제든 찾아와서 편안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면 족하다. 아이들이 수업시간이나 과제로 주어진 문제들을 도서실에서 찾아 스스로 해결하는데 어려움이 없어야 하고, 때로는 고민을 해결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힘든 학교 생활에서 쉼터가 되기도 하는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도서실은 건물 꼭대기의 구석진 곳에서 외롭게 아이들을 기다리는 공간이기보다는 아이들이 찾아오기 쉽게 눈에 띄는 곳에 있어야 한다. 그리고 도서와 비도서자료(비디오, 오디오, CD자료 등) 구입을 위한 충분한 예산이 주어져야 한다. 이 모든 것은 도서실에만 매달릴 수 있는 사서교사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이제 우리학교의 도서실은 내가 바라는 학교도서관의 모습에 어느 정도 다가서고 있다. 공간이 넓어졌으며 하루에 이용하는 아이들의 수도 늘었고, 하루에 비록 3시간 정도이지만 개방이 가능하며 아이들이 앉아서 책을 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제일 가고 싶은 곳, 누구나 이곳에 오면 편안하다고 느끼게 되고 책을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고 싶다.
 지난 4월 도서실을 이전하고 나서 방울토마토를 심었다. 방울토마토가 이젠 불그스름하게 변해간다. 지금 도서실에서 익어가는 방울토마토처럼 우리 도서부 아이들과 내가 바라는 도서실의 모습이 그렇게 익어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