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있는 녹색

 

   아직 둘째 날이다.

   2017년 4월 21일 금요일 저녁, 이 일을 상의하기 위해서 운영위원장에게 전화했다. 5시 50분에 만났다. 6시 30분에 운영들 저녁 회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위원장은 이리저리 둘러대다가 안 되니까 회식에나 가자고 했다.

 

1번 운영위원

   회식자리, 내가 이야기를 꺼내자, 공무원이 제일 먼저 나서서 '그 여성'을 방어하기 시작했다. 이 공무원 여성은 시험도 안 보고 군수 마음에 들어서 공무원이 되었다고 하는데, 사실 여부는 확인 안 해봤다. 내가 아는 것은 공무원은 겸임 금지에 걸려서 운영위원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한다. 왜? 좋게 말해서, 교육청이 일을 안 하니까. 기고만장 자기들 세상인데, '법' 따위가 뭐냐고! 이 공무원 여성은 현재도 여자중학교에서 여전히 운영을 하고 있다.

 

2번 운영위원

   또 한 운영은 성을 내며 내게 트집질이다. 녹색으로 '그 여성'이 얼마나 애쓰고 있는데 무슨 말이냐고 성질을 부렸다. 녹색이 급식점검과 무슨 상관이며, 녹색하는 여성들에 대해서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인지. 녹색은 법 위에 있다는 말인가!

   이것이 학교내에서 녹색의 위상이다.

 

   학교에는 법률상으로 학부모들이 참여하도록 되어 있는 자치조직과 활동들이 있고, 아무래도 사람 사는 곳에서는 여러 명의 협조를 구해야 하는 일들이 있다. 부모들은 참여하고 싶은 욕구가 있고, 학교 돌아가는 사정을 알고 싶어 한다.

   그런데 녹색이 학부모회부터 온갖 자리를 다 차지하면 정보에서 막힌다. 한 여성이 예닐곱 개씩 하고 또 서너 명이 서너 개씩 해버리면, 다른 학부모들은 학교 정보에 어두울 수밖에 없다. 속 터지는 일이다. 간혹 녹색이 선심 쓰듯 학교 돌아가는 일을 알려주면 감지덕지 들어야 하는가? 참 거지 같은 일이다.

   그래서 뭐라도 하고 싶지만, 녹색은 불가능한 일이다. 매일 아침 8시부터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데, 직장인이든 전업주부든 어떻게 할 수가 있나. 총회에라도 참석하면, 불가능한 녹색을 해달라고 할까 봐 참석하고 싶어도 꺼리게 된다.

   학기 시작하고 3주 정도 되면 학부모총회를 한다. 가보고 싶지. 그런데 총회에 참석하면 녹색 좀 해달라고 할까 봐 못 간다고 말들을 한다.

   교장은 총회에 학부모들이 많이 오는 것을 원치 않는다. 말은 반대로 하지만 많이 오는 것을 꺼린다. 학부모들이 학교 돌아가는 사정에 대해 모르길 원한다. 알면 골치 아프니까. 떳떳하게 학교를 운영하는 교장이라면 이렇지 않지만, 대개는 학부모들이 학교 일을 아는 것을 꺼리며, 참여를 어떻게 해서든 막으려고 든다. 이 내면의 본심을 헤아려서 해주는 것이 녹색이다. 이 지점에서 교장과 녹색은 상호 의존한다. 그리고 녹색이 다른 학부모들이나 학교를 상대로 기세등등한 이유이다.

 

   이런 너절한 이야기들을 왜 하냐고 하면, 녹색이 학교자치를 어떻게 철저하게 깨부셨는지, 그걸 똑바로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교육청과 교육부는 이런 실정에 대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이 건에 관한 한 이해관계가 같다. 게다가 교육자치 차원은 단위 학교 말고도 교육청에도 적용되어 교육청의 일에도 학부모들의 협조가 필요하다. 시키는 대로 해줄 학부모가 필요하다.

   사정이 이러한데 교육자치, 학교자치를 운운하지 말라! 당신들 다 알면서 거짓말하고 있다.

 

3번 운영위원

   적의에 찬 분위기 와중에 다른 한 명이 이것은 교장이 처리해야 될 사안이라고 말하면서 분위기가 약간 바뀌었다.

   여기서 중요한 말, "교장이 처리해야 될 사안", 명분상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다. 운영위원을 교장이 뽑으니까. 좋게 말해서 교장의 부하들이니까. 대장이 처리해야 한다는 뜻이다.

   스스로 운영 신청서를 쓴 사람은 나 한 명뿐이다. 즉 그들은 모두 '그 교장'이 '임명'한 사람들로 교장과 한 편이다. 친분 여부와 무관하게 '그 여성'과도 동지적으로 한 편이다. 즉 그들은 다른 학부모들을 상대로 한 편이란 말이다. 내가 운영이 되는 순간부터 운영들은 나에게 적대적이었다. '그들 안'의 사람이 아닌 '그들 밖'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아이가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운영을 선출하니 신청서를 내라는 알림장이 왔다. 이게 뭔가 하고 교육청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운영위원회 조례가 있었다.

   읽었다. '아, 이거 해야 되겠구나.' 왜냐고 하면 나는 아이가 학교에 가면 아이들 학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려고 생각 중이었고, 초등학교에서 한글을 안 가르친다는 해괴한 소문도 사실인 것 같아서, 아이들 공부를 잘 챙겨줄 방법을 찾아보려고 마음 먹고 있었는데, 운영위 조례를 보니 딱 맞춤했다. 이런 일은 운영이 되어서 하면 좋겠구나. 참 좋은 제도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운영위원회는 법률에 따라 운영되지 않았다.

   3월 8일 행정실에 운영 신청서를 쓰러 갔다. 담당자는 태권도 학원 사범과 이야기 중이었고, 나는 기다렸다. 담당자는 사범이 나가자 따라 나서면서 내 눈길을 외면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곤 들어오지 않았다. 괴이쩍다고 느낄 만큼 긴 시간이 흘러도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계속 기다렸다. 침묵. 얼마간의 침묵이 흐른 후에 행정실장이 약간의 미소와 함께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했다. 담당자는 내가 갈 때까지 들어오지 않았고, 이것은 신청서 받는 것을 회피하는 그들의 정해진 행위였다.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기 무안해서 눈치껏 나가라고? 나는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읍사무소에 가서 등본을 떼어와야 하고 사진도 있어야 한다고 해서 다음 날에 다시 갔다.

   9일에 제출했다. 분위기, 행정실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이것은 아주 이례적이고 무안하고 당황스러운 일인 듯 보였다. 어쩌면 이들은 운영위원 신청서를 쓰러 온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17일 학부모총회, 무투표 당선. 전국의 거의 모든 학교가 이렇다. 가끔 고등학교에서는 자녀의 대학입시를 위해 운영위원 신청자가 많아서 선거를 하기도 하지만, 전국의 모든 학교가 선거 없이 무투표로 당선된다. 이러면 실정이 전국적으로 비슷하다고 볼 수 있다.

   총회 당일에 교장실에 운영들이 모였고, 이때부터 나에 대한 적대적인 사람들 속에서 지내게 되었다. 무상급식 비리 이전부터 나에게 적대적인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운영, 녹색, 교장, 교감, 수위 여성, 경찰 여성이 이들이다. 이들이 제도로 규정한 학교자치를 방어하는 '그 학교'의 핵심들이었다. 학교자치도 방어하고, '그들 안'에 학교의 이권을 배분하기 위해 '그들 밖'을 방어한다.

   단순히 절차를 무시하고 마음대로 일을 처리하면 안 된다고 말했을 뿐인데, 잔뜩 긴장해서 방어적으로 나온 '그 여성'의 이유와 운영들이 방어하려고 한 것은 간다. '그들 안'에 '그들의 이익'을 배분해야 하는 '이익공동체' 내지 '동지들'이었다. 그러기 위해 학교자치를 부수어야 하고, 그 일선에서 녹색이 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운영, 이들의 태도, 참 뭐라 할 수 없는 인간의 저열한 품성. 사나운 눈빛, 내가 가면 등 돌리기, 몸에서는 시커먼 기운이 나오고 얼굴은 시커멓게 증오에 차서 부어 있고, 어느 날은 굽실거리며 인사하고 또 어느 날은 시커먼 얼굴로 부어서 빤히 노려보기도 한다. 이들! 참 똑같은 태도를 갖고 조직적으로 움직였다.

   운영위원회에 대해서는 찬찬히 더 이야기를 하겠다. 급식소위의 파행도 결국은 운영의 소관이고, 공모교장을 8년 하겠다는 것도 운영들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내일과 모레는 주말이고, 교장 면담은 월요일에 해야 겠다.

2017년 4월 6일 운영위에서 위원장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이다. 1번 김미희는 최미희로 성을 바꾸어 인쇄했고, 그들 밖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커서 나타난 고의적인 실수이다. 실효없는 유치함이지만 배척의 적대감은 섬세하게 조직되었다. 9번은 공무원여성이다.
2017년 4월 6일 운영위에서 위원장 선출을 위한 투표용지이다. 1번 김미희는 최미희로 성을 바꾸어 인쇄했고, 그들 밖의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너무 커서 나타난 고의적인 실수이다. 실효없는 유치함이지만 배척의 적대감은 섬세하게 조직되었다. 9번은 공무원여성이다.

 

/최미희 시민기자 gatbaram@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