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주긴 뭘 알려줘, 난 유선방송보느라 몰랐는데 옆 집사람이 전화로 가르쳐주데, 율곡리서 구제역 났다고. 그 사람도 방송보고 알았다는구먼.”
 지난 3일 오전 11시 의사구제역이 발생한 안성시 율곡리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용인시 백암면.
 이 마을에서 젖소 34마리를 키우고 있는 조모씨(71)의 집에 다급하게 전화벨이 울리고 있었다.
 그제야 아침에 방역차량이 율곡리로 향하는 집앞 도로를 다급하게 지나간 이유를 알게됐다. 처음엔 1주일에 2차례 늘상 해오던 구제역 예방활동이거니 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킬 틈도 없었다. 전화를 끊고 밖으로 나와 젖소부터 찾았다. 다행이라며 한 숨을 돌린 조씨는 미리 준비한 생석회를 출입문 바닥에 뿌렸다. 행여 불똥이 튈까 축사주변을 소독했다. 출입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것도 모자라 범죄현장에서나 볼법한 노란띠를 둘러 외부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그래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두근두근 가슴 한 켠에 원망스러움이 솟아올랐다.
 무엇에 쫓기듯 율곡리로 횡하니 달려가던 방역차량이 방송만 했더라도, 집앞도로를 지나며 소독약만 뿌리고 갔더라도 마음이 한결 가벼웠을 거다.
 조씨에게 구제역 소식을 전해준 것은 다름 아닌 마을 주민들이 지난 2000년 파주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자발적으로 구축한 비상연락망이었다.
 사정은 평소 서로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예방활동을 벌여온 안성지역 주민들도 마찬가지. 이날 대형 트랙터에 살포기를 달고 마을 주변을 소독한 것도 시나 방역당국이 아니라 주민들이었다.
 안성에서 발생한 구제역이 소강기미를 보인다니 다행이다. 그러나 이는 월드컵 손님을 맞이한다며 그 동안 요란하게 구제역 예방활동을 벌인 관계 당국보다 생존권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선 결과라는 생각에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