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세상을 다스리고 백성을 구제한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뜻이라면 한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산업이 있게 마련이다. 70년대의 무역, 80년대의 금융, 90년대의 정보통신이 바로 그것이다.""
 `CEO시장론""을 주창한 한나라당 안상수 후보는 그가 쓴 `뉴욕은 블룸버그를 선택했다""라는 저서에서 우리나라 경제사의 흐름을 이렇게 서술했다.
 특히 `기업인으로 성공하려면 당대 첨단산업의 흐름을 포착할 줄 알아야 한다""는 CEO자질론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이 대목은 바로 그의 `경제이력""이기도 하다.
 안 후보는 70년대 중반, 당시 샐러리맨의 동경의 대상이었던 제세그룹의 초창기 멤버로 `제세 신화""를 만들어내며 그룹이 도산하기 직전까지 회장 비서실장으로 `수출입국""의 핵심에 있었다.
 이후 83년 일국증권(현 동양증권)에 입사해서는 당시 금융분야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채권투자 담당으로 회사에 상당한 수익을 올려준 것이 계기가 돼 부장으로 입사한지 1년만에 이사로 전격 발탁되는 행운을 안는다. 그러나 그는 증권활황기였던 80년대 후반, 명동 증권가에서 소위 잘나가는 `펀드매니저""로서의 명성을 뒤로 하고 홀연 미국행을 택하게 된다.
 시카고, 뉴욕 등 국제금융과 선물의 중심도시에서 직접 선진 금융기법을 체득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그는 국내 최초로 `국제선물거래사"" 자격증을 획득한다.
 이어 90년대들어 그의 관심은 정보통신산업으로 전이된다. 동양그룹 기획조정실 사장시절, 데이컴 인수를 위해 동양그룹이 중심이 돼 컨소시엄을 구성하고 사업권 획득을 위해 경영주를 설득, 동분서주하게 된 것.
 안 후보가 같은 `CEO시장론""을 주창하고 나선 민주당 박상은 후보를 겨냥, “항공과 항만, 정보통신단지 등 이른바 `트라이 포트""를 완성하고 인천을 국제도시로 부상시키기 위해서는 제조업 중심의 1차적 경영마인드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CEO 비교우위론""을 전략화하고 나선 것도 이같은 경제이력이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박 후보는 줄곧 제조업 중심의 대한제당 그룹에서 일해왔다고 주장하는 반면 자신은 무역과 금융, 이동통신분야 등 주로 첨단산업분야에서 경제안목을 넓혀왔다는 것이 안 후보진영의 차별화 전략인 것이다.
〈박주성기자〉 jspark@incheontime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