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금의 인천은 흔히 제2개항기로 불린다. 최기선 시장뿐 아니라 지역 인사들은 행사가 있을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르도록 이를 역설한다. 국제공항 개항으로 새로운 도약기를 맞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를 촉구하는 지적도 적잖다. 최정철 박사(인하대 경영연구소 책임연구원)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는 데는 동의한다. 다만 100년 전도 그랬지만 지금의 개항도 지역민들이 주체가 된 것이 아닌 이상 낙관만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지난 개항기를 거울삼아 주체적인 대응능력을 강화해나가야 할 때”라 강조한다.
 그렇다면 지난 제1개항기 때 이 땅에는 어떤 일이 있었나. 그리고 우리는 지난 개항기에서 무엇을 배워야 하나.
 시계 바늘을 잠시 100년 전으로 돌려보자. 외세의 강압에 의해 항만이 개항되자 인천에는 상상을 초월한 대변화가 일었다.
 우선 도시의 중심이 문학동에서 제물포(지금의 신포동 일원)로 옮겨졌다. 그리고 제물포에는 지금의 경제특구에 비유되는 외국인 거류지가 구획되고 외국뿐 아니라 국내 각처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이 결과 인천은 개항된 지 얼마 안돼 우리나라 정치, 외교의 중심지로 부상한다.
 변화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국내외 상인들이 밀려들면서 상업은 전통산업인 농업을 밀어내고 주력산업으로 자리했고 정미업, 성냥공장 등 제조업이 연이어 설립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무게중심도 인천으로 옮겨진다. 이름하여 팍스 인천시대가 열린 것이다. 하지만 영광과 번영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개항 주도세력들의 서울 지향성으로 인해 서둘러 인천~서울간 교통로가 개설되면서 인천은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는다.
 이를 촉발한 것이 바로 철도의 개설이었다. 당시 지역사회는 고속 교통수단이 개설된다는 점에서 찬양일색이었지만 이런 기대와는 달리 철도가 개통되자 지역에 위치해 있던 정치, 외교, 경제단체와 시설들이 순식간에 서울로 이전해 갔다.
 사정이 이러하건만 지역민들은 속수무책이었다. 아니 막을 힘조차 없었다. 안타까움 속에서 이런 탈인천 현상은 이후 도로와 철도가 확장, 개선되면서 더욱 심화됐다. 한마디로 제1개항기는 지역민들의 주체적 대응력 부족으로 외형만 화려했던 발전기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시각이다.
 다시 찾아온 개항기. 동북아 국제비즈니스 중심국가 건설 프로젝트는 지역에 영속적인 발전을 가져다줄 기회인가 아니면 위기인가. 이런 점에서 세계공항학회 엄태훈 회장의 말은 많은 것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번 프로젝트는 그 규모면에서 중앙정부가 주도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지역이 손을 놓고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입지적인 이점을 활용, 중앙뿐 아니라 외국의 재원과 관심을 이끄는 것이 바로 지방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지역민들의 공감대 형성과 공동 대응은 특히 중요하다.” 〈김홍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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