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춘재 연쇄살인 수사 마침표]

피해자 아픔·고통 공감 못해
억눌렸던 자아, 전역 후 폭발
성적 욕구 표출 … 수법 잔혹
범행 자백 불구 동기는 침묵

이춘재는 전형적인 사이코패스였다. 피해자와 유가족들이 겪었던 아픔과 고통을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

자신의 죄를 뒤집어쓰고 20년간 옥살이한 윤모(53)씨에 대한 미안한 마음도 없었다. 범행 원인도 피해자들에게 넘겨씌우는 등 자기중심적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이춘재가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면서 한 말이 자극적이어서 입에 담을 수 없다”고 했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2일 1년에 걸친 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이춘재는 사이코패스 심리테스트 결과 상위 65~80%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기수 경기남부청 2부장은 “피해자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며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타인에게 관심받고 싶어 하는 등 사이코패스 성향이 뚜렷하다”고 했다.

 

#유년 시절 내성적인 이춘재…군 복무 이후 돌변

경찰은 이춘재가 어린 시절 억눌렸던 자아가 군 전역 후 폭발하면서 범행을 시작했다고 판단했다. 성적 욕구를 풀기 위해 피해자를 찾아다녔는데 범행은 점점 잔혹하고 가학적으로 변했다.

이춘재는 유년시절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랐다.

초등학생 시절 동생이 물에 빠져 숨진 사고로 큰 충격을 받았지만, 감정을 표출할 수 없는 환경에서 성장했다. 누군가에 늘 끌려다니는, 늘 내성적인 성격을 갖고 학창시절을 보내다가 20대 초반 군에 입대했다.

이춘재는 군에서 유년시절 경험하지 못했던 주도적인 역할을 처음으로 하게 되면서 굉장한 희열을 맛봤다. 기갑부대에서 군 복무할 때 자신이 탱크를 몰고 앞으로 향하면 뒤에서 다른 탱크들이 뒤따라올 때 우월함을 느꼈다. 경찰 조사에서도 “주도적으로 하니 모두 나를 따라오는구나”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때 이춘재가 성취감을 경험하면서 그간 감정을 억누르기 위해 채워놓았던 마음속 '걸쇠'를 풀어버린 것으로 판단했다.

 

#전역 후 첫 범행 이후 14명 살해, 9명 성폭행

이춘재는 1986년 1월23일 전역한 뒤 불과 한 달도 지나지 않은 2월18일 첫 범행을 저질렀다. 이때는 살인이 아닌 여성에 대한 성폭행 시도였다. 이로부터 7개월 뒤인 9월15일 첫 살인인 1차 사건을 저질렀다. 성범죄, 살인에도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던 이춘재는 연쇄살인으로 이어갔다. 그 해 10월20일(2차), 12월12일(3차) 등 잇따라 저질렀고, 점점 범행수법도 잔혹해졌다.

반 2부장은 “군 제대 후 단조로운 삶 속에 쌓여 왔던 욕구불만을 표출하고자 밤거리를 배회하며 돌아다녔다”며 “지나가는 여성을 살피며 범행 대상으로 찾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여전한 성도착적 행동과 자기중심적 모습

이춘재는 조사 과정에서 여성 프로파일러에게 “손이 이쁘시네요. 손 좀 잡아봐도 돼요?”라고 말하는 등 성도착적 행동은 여전했다고 한다.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미안함도 없는 태도로 일관했다. 오히려 자신의 안위를 걱정했다. 조사관에게 “다른 수용인들과 함께 생활했던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하는 등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였다.

 

#범행동기 끝까지 침묵

이춘재는 54차례의 대면조사에서도 '범행동기가 무엇이냐'는 직접적인 질문에는 끝내 침묵했다. DNA가 일치하면서 가석방 가능성이 사라지자 4번째 조사 때 “언젠가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며 모든 범행을 자백했지만 '왜'라는 질문에는 입을 닫았다.

권일용 동국대 경찰사법대학원 겸임교수는 동기를 밝히지 않은 배경에는 '수치심'이 있다고 분석했다.

권 교수는 “성범죄 연쇄살인범들은 자신의 범죄가 파렴치하다는 걸 스스로 알고 있다”며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에 수치심을 느낀다”고 했다. 이어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을 감추기 위해 더 높은 친절을 베풀거나 조용한 성격으로 포장하는 경향이 있다”며 “범행 사실을 자백한 이춘재에게도 동기만큼은 끝까지 말할 수 없었던 일”이라고 했다.

/이경훈 기자 littli18@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