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잃은 그대에게(18)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수갑을 채워 사단으로 이송 중인 반체제 사범이 수사관 몰래 품고 있던 단도를 꺼내 운전석에 앉아 있던 백영태 중위의 옆구리를 찔러버리고 달아난 것이었다.

 그 반체제 사범은 나중에 잡혀 공개총살형에 처해졌지만, 그 사건으로 백중위는 어린 딸 하나와 아내를 남겨놓고 세상을 떠났고, 그 수사구루빠 속에 있었던 문중위와 박중위는 그날의 과오로 아직도 진급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었다.

 『세월이 흐르는 물 같지? 오늘 1주기 제삿날이야. 우리 나가서 백중위 부인 위로나 좀 해주고 오자. 지난번에 쌀 한 마대 갖다주러 갔을 때 오늘 1주기라며 꼭 놀러오라고 했다네.』

 『기래, 같이 가서 백동무 초상화에 묵념이라도 한번 해주고 오자구. 출출하구 배두 고파.』

 『내일 바쁘게 마쳐야 할 일이 많은데 술 먹어두 괜찮을까?』

 문중위가 달갑잖은 표정을 지었다.

 『됐어. 소좌 동지한테 아까 말했어. 죽은 백중위 1주기라서 차 좀 써야겠다구.』

 리상위가 망설이는 문중위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문중위는 뚝뚝 떨어지는 빗방울이 거슬린다며 싫은 내색을 보이다 같이 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제삿날 기냥 갈 수는 없잖아?』

 박중위가 그때사 생각난 듯 선물을 걱정했다. 리상위가 말했다.

 『낮에 사단 보위부 사관장한테 부탁해 입쌀 5키로(kg) 하고 술 두 병 구해 놨어. 빨리 차나 타라우.』

 리상위는 문중위와 같이 지프차 곁으로 다가갔다. 한 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지고 있었다. 리상위는 비가 내리는 밤하늘을 쳐다보며 담뱃불을 껐다.

 『제기랄! 백중위 애석하게 죽었다구 하늘도 울어주는 것 같구먼, 빨리들 타.』

 『입쌀하구 술부터 실어야지. 기건 어디 있네?』

 박중위가 운전석에 올라앉으며 물었다. 그때 리상위가 대대 보위부 사무실에서 입쌀이 든 마대와 술병을 들고 왔다. 문중위가 얼른 다가가서 술병을 받아왔다. 박중위가 운전석에 앉은 채로 입쌀 마대를 받아 안으로 밀어넣었다. 굵어지던 빗방울이 다시 가늘어지며 국방군 고성기 방송의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박중위가 말했다.

 『저 간나 새끼들, 또 시간 되었구먼. 전두환 역도와 그 졸개들이 밤마다 저렇게 개 짖는 소리를 해대니까 공화국 군대에 7번사건 이 끊어질 날이 없지. 내래 지금껏 중위 달고 있는 걸 생각하면 저 간나들 가랭이에 수류탄을 까도 한이 안 풀려, 쌍!』

 『박동무, 흥분하지 말라. 나도 중위 달고 있다.』

 뒷좌석에 앉은 문중위가 웃었다. 그들은 백영태 중위가 죽은 후 문책을 당해 지금껏 진급을 못하고 있던 참이었다. 리상위가 손수건을 꺼내며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