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을 키우면서 학업이든 놀이이든 또는 아이들끼리 작은 다툼에서든 결코 져서는 안되는 것처럼 아이들을 몰아세우고 있다. 부모들 마음이야 자기 자식이 남의 자식보다 공부도 잘하고 힘도 더 세고 키도 더 크고 운동도 더 잘하기를 원한다. 단지 원하는데 그치지 않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실제로 그렇게 되도록 몰아붙인다.
 자식이 친구들과 다투고 징징 울면서 들어오면 분을 삭이지 못해 자식을 윽박지르기도 한다. 내 자식이 남의 아이를 때려서 치료비를 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맞고 들어오는 꼴은 보기 싫다고 소리지른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이기는 법을 뱃속에서 터득하고 나오므로 가정이나 학교에서 구태여 이를 따로 가르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남에게 지는 방법은 부모나 선생님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들 사회에서는 이기는 것보다 지는 일이 훨씬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큰 조직이든 작은 조직이든 또 어른들의 세계이든 아이들의 세계이든 1등은 한명 뿐이고 그 한명의 1등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패배와 좌절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설혹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모든 분야에서 1등은 하기 힘들다.
 기계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이 대중을 위한 연설이나 예능에서 뒤떨어지는 경우가 많고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건강이나 가정문제로 속썩는 일로 고민하고 또한 권력을 가진 자들이 권력을 이용, 치부하다 감옥으로 가는 경우를 우리는 보아왔다.
 인간이라는 것은 일상적인 패배나 예의적인 승리로 이루어진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지는 연습을 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자신의 뜻대로 되지않을 때 다른 사람과 타협할 줄 알고 자신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더라도 자존심 때문에 우울증이나 신경증에 시달리는 일이 없도록 꾸준히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지는데 익숙한 아이, 남보다 뒤떨어져도 스트레스를 덜 받는 아이, 지면서도 남을 이해할 줄 아는 아이야말로 진정으로 남을 위하고 사회를 위하며 나라를 위할 수 있다고 본다.
 이제 모두가 내가 제일이라는 왕자와 공주만으로 넘쳐날 앞으로의 세상에서는 남에게 지는 것을 아는 사람, 또 남을 위해 일할 줄 아는 일꾼과 심부름꾼이 귀중한 사람으로 존경받을 지도 모른다.
 이 같은 주장은 단순한 말의 성찬이 아니다. 지는 방법을 알지 못하고 사회에 나간 귀엽게 자란 아이들 대부분은 지는 자신을 어쩌지 못한 채 좌절하고 실망하기 쉽다. 반드시 이겨야한다는 강박감을 갖고 사는 아이들은 패배로 인하여 사회에서 쉽게 좌절에 빠지게 되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을 알지 못한 채 뒤처지고 말게 된다.
 지는 것을 배운다는 이야기는 타인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남의 몫을 존중해주고 남에게 양보할 줄 아는 마음을 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인의 개성이나 능력 그리고 감정들을 긍정적으로 자각할 때 우리는 타인의 몫을 생각한다.
 선거철이 많이 남았지만 모두가 이겨보겠다고 아우성이다. 물론 2등이 소용없는 선거이지만 1등을 하기 위해 벌써부터 상대를 헐뜯는 소리가 들리고 있다. 이들이 어려서부터 지는 것을 배웠다면 남을 헐뜯고 욕하지 않으면서도 1등 할 수 있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늦었다고 할 때 시작하면 늦지 않았다고 한다. 이제부터라도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지는 법도 가르쳐주자. 그래서 우리 후대에는 지금과 같이 이기기 위해 싸움질하는 사회가 되지않고 훌륭하게 자란 사람만이 모여 여유있고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도록 해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