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었던 섬 송도] 공간을 사유화하다
[없었던 섬 송도] 공간을 사유화하다
  • 장지혜
  • 승인 2019.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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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워진 바다와 갯벌, 매워진 땅에 대한 욕망
▲ 송도유원주식회사가 만든 송도임해주택지 분양 전단지. 모두 70호를 분양하며 1호의 면적은 150평부터라고 적혀 있다. 일제강점기 공간의 사유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 송도유원지 팸플릿 중 송도임해주택지 부분. 가운데가 제1회 택지분양지, 양 옆이 제2회 택지분양지다.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 1950년대 옥련동에 위치했던 해주정씨(海州鄭氏) 묘역. 인천시가 본격적으로 추진한 토지개발 사업에 밀려 인천 서구 오류동으로 이전했다. /사진제공=인천시립박물관


일제강점기 송도유원지 인근 청량산 자락에 별장지 개발

택지 조성 사업 여파 1990년 땅값 석달 새 갑절로 뛰기도


송도유원지를 둘러싸고 '관광 인천'을 이루고자 했던 욕망은 또 다른 욕망으로 이어졌다. 경치 좋은 유원지를 포함한 인근 땅을 사유화하며 부의 축적 수단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예로부터 송도는 사람들이 갯벌을 일구고, 바다와 함께 생활하던 공간이었다. 공공의 자산이었던 갯벌과 바다는 점차 사유화 됐다. 관광을 명분으로 갯벌을 메워 유원지를 만들더니 주변의 땅을 헐값에 사들여 임해주택단지라는 그럴듯한 이름으로 분양했다. 공간의 사유화는 시대를 가리지 않았다. 먼 옛날 백제 사신을 태운 배가 출발했다던 한나루는 조선시대 언젠가 논밭으로 간척됐고 1980년대의 사람들은 그곳을 다시 아파트 단지로 만들었다. 청량산 중턱으로 집들이 들어서더니 조상님 선영(先塋)은 상가로 변했다. 평생을 일구었던 논밭에는 아파트가 들어섰다.

공간을 사유하고자 했던 자본의 욕망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바닷가 사람들의 터전이던 갯벌을 메워 땅으로 만들었다.

바다가 뭍이 되어버린 이곳을 사람들은 또 다시 '송도'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송도임해주택단지
송도유원지에 투자했던 경성 자본가들은 인근 땅에 대한 토지개발에 눈을 돌렸다. 이들은 유원지 내 별장을 건설하는 동시에 청량산 자락의 임해주택지 개발에 착수했다.

이를 위해 송도유원주식회사의 자회사인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가 설립됐다.

송도유원지 내 별장지는 공기 좋고 물 좋은 유원지 내에서 휴양을 즐기며 숙박도 할 수 있는 당시 신개념의 휴양시설이었다.

1938년 4월 이 별장지를 일반에게 분양했다. 대상은 송도유원지 동북쪽 사면 3만평에 해당하는 100필지였다.

당시 한 필지당 3~8엔으로 분양됐으며 분양자에게는 부지 공사비를 10% 할인해 주거나 할부로 대금을 치르게 하는 특전이 주어졌다.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는 청량산 인근 부지도 택지로 분양했다.

1938~1939년 2년에 걸쳐 두 차례 분양이 이뤄졌다. 제1회 분양 때는 약 70필지에 해당하는 택지를 필지당 3~15엔에 판매했다. 제2회 때는 현재 가천인력개발원 언덕과 지금의 시립박물관 건너편 송도소방서 부근이 대상이었다.

지금도 남아있는 당시 분양 홍보지를 보면 '전시체제 하에서 자산의 확실한 보전은 토지투자가 제일이다'라는 문구가 있다. 송도임해토지주식회사는 '금회의 분양은 10만평의 유원지가 정면에 펼쳐진 이상적 보건향(保健鄕)'이라며 분양을 부추겼다.

분양 결과 별장지와 제1회 택지분양은 완료됐으나 제2회 택지분양은 미분양된 것으로 보인다.

▲옥련동 토지구획정리사업과 주택개발
송도유원지로 촉발된 토지분양 붐은 인천시에도 영향을 미쳤다.

인천시는 1960년대 120만평에 달하는 택지조성구획안을 세웠다. 시는 앞으로 10년 후의 인구가 100만명이 될 것이라며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도시계획을 내세웠다.

시는 구 시가지에만 밀집한 인구를 균등하게 분산시켜 짜임새 있는 근대도시를 형성코자 송도와 용현지구의 45만평, 주안지구의 56만평과 부평·송림·숭의지구 구획정리지를 합해 모두 120만평의 신시가지를 조성할 계획을 발표했다.

산업시설 정비계획의 하나로 부두 매립지 60만평, 주안염전 매립지 22만평, 부평지구 22만평 도합 104만평을 공업단지로 사용할 방안도 세웠다.

토지구획정리사업은 대지로서의 효용 증진과 공공시설의 정비를 위하여 토지의 교환·분합, 기타의 구획 변경, 지목 또는 형질의 변경이나 공공시설의 설치·변경에 관한 사업을 의미했다.

시는 계획과 개발, 환지의 3단계로 나눠 진행했으며 토지 구획 정리 사업의 집행 절차, 방법 및 비용 부담 따위에 관한 사항을 규정했던 '토지 구획 정리 사업법'이 근거가 됐다.

가장 대표적인 사업인 옥련동이었다. 옥련동의 토지구획정리사업과 관련해 1967년 1월24일 관보에 실린 '건설부 공고 제16호'에 '인천도시계획 주안 제2공구 및 송도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공지하며 사업 시행지구 중 옥련동이 송도지구로 지정됐다. 송도지구의 시행면적은 7만2000평에 달했다.

이어 인천시는 송도 제2공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추진한다. 송도 제2공구의 시행지역은 옥련동과 동춘동이었고, 시행면적은 11만2000평이었다.

시는 1976년에 송도 제1토지구획정리사업 시행을 명령하고, 1977년에는 제1토지구획정리사업의 시행을 인가한다.

이때 송도비치호텔이 건설되고 주거지역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7년~1986년의 일이었다.

▲투기 과열에 대한 우려도
송도 제2공구도 토지 구획 정리가 진행되며 당시 일간지 신문에 아파트 분양 광고가 본격적으로 실렸다.

벽산대재빌리지, 한샘빌라, 세광양지빌라, 송도럭키아파트, 현대아파트, 우성아파트, 한국아파트, 쌍용아파트 등 아파트를 비롯한 다양한 주택들의 분양 광고들이 연이었다.

그러나 부동산 개발과 분양 열기가 높아지면서 옥련동 지역의 땅값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1990년 3월30일자 매일경제신문의 기사에는 이런 걱정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동안 잠잠해지나 싶었던 부동산 투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토개공(土開公)이 발표한 2월 중 땅값 동향에 따르면 서해안개발지역과 동해안 일대, 경기 북부 및 대전·중부권 등 전국 대부분의 땅값이 큰 폭의 오름세를 지속하고 있다. 보도되는 바로는 작년 말이래 불과 3개월여에 최고 100% 이상 오른 곳만도 인천 옥련동을 비롯 춘천 등 강원도 북부지역의 논밭 등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 새해 벽두부터 전·월세 값의 급등이 선도하는 아파트 등 주택가격의 상승추세를 감안할 때 조만간 전국이 또 한 차례 부동산 투기의 소용돌이 속에 빠져들지 않을까 걱정스럽기 그지없다."

/장지혜 기자 jjh@incheonilbo.com

인천일보·인천도시역사관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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