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한일 갈등이 출구를 전혀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갈수록 양국 국민 간의 감정의 골은 깊어가고 있다.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은 양국 간 갈등의 원인을, 정치문제를 경제문제로 확대시킨 일본정부에 있다고 보고 있다. 한 일본의 지식인이 지난 8월2일 일본정부가 안보상의 이유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시킨 직후,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내왔다.

"아베는 터무니없는 정치가입니다. 일본 사회의 보수화는 확실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역사를 반성하는 시각은, 아베 정권은 물론 그 주변의 정치가에게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일본의 전후 70년 총괄에서도 식민통치에 잘못이 없었다는 인식을 했습니다. 당시의 국제사회는 그것을 인정했기 때문에 잘못이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념적으로 선악의 판단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청구권협정이라는 국제조약을 깬 것은 한국이라고 몰아붙이고 침략한 '책임'은 그것으로 끝났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인식으로는 양국 대화의 기초가 전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념적으로 선악의 판단을 하면 실로 간단한 문제인데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이 아베입니다."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이 7월말부터 '한국이 적인가'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지서명 운동을 펼치고 있다. 그들은 일본정부에게 수출규제 철폐와 한국정부와 대화를 통한 문제해결을 촉구하고, 아베 총리에게 일본 국민과 한국 국민을 이간하고 대립·반목을 조장하는 정책을 그만두라고 요구했다. 지난달 31일까지 서명에 찬동한 시민은 9463명으로 한 달만에 1만명에 육박했다. 어제까지 홈페이지에 게재된 찬동 의견은 5000건에 달했다. 한 시민은 "과거 일본이 한반도를 식민지화한 역사를 은폐하고 혐한(嫌韓)을 조장하는 아베정권은 역사를 왜곡하고 동아시아의 역사와 우호를 파괴하는 것으로, 인정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죄와 우호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또 다른 시민은 "서로 상대를 존경하고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정치에 좌우되지 않는 견고한 우호를 일본과 한국 사이에."

이처럼 일본인 사이에 한국에 우호적인 시민이 적지 않다. 그들은 아베정권의 한국 '무시정책'을 신뢰하지 않으며 일본의 평화헌법 수호를 부르짖고 있다. 강제징용노동자 문제와 일본군 위안부 문제 관련해서도 한국의 시민단체와 협력해 문제해결에 적극 노력해 왔다. 점차 우경화하는 일본사회에서 그들이 이러한 운동을 전개하기란 쉽지 않다. 일본에서 아베정권을 적극 지지하는 층은 전체의 20~30%에 불과하지만 이들은 아베 총리의 지지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목소리를 사회 전반에 적극적으로 발신하고 있다. 정치에 무관심한 부동층이 그들의 여론몰이에 힘입어 아베의 혐한정책 지지자로 돌아서고 있다.
일본의 여론조사에 의하면, 7월 26일∼28일 조사 때와 한 달이 지난 현 시점의 조사결과는 그런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일본정부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해서는 7월 말 찬성이 전체의 58%에서 8월 말에는 67%로 9%p 증가했다. 아베 내각의 지지율은 이번에 58%를 기록해 이전 조사 때보다 6%p 높아졌다. 일본정부가 한국과의 관계에 어떻게 임해야 하느냐는 물음에는 '양보할 정도라면 관계 개선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이 67%로 '관계 개선을 위해 일본이 양보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21%)의 3배를 웃돌았다.
한국정부는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에 대하여 여러 대항 조치를 내놓았다. 한국정부는 그러한 대항 조치가 합리적이며 누구나 납득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러한 대항 조치가 일본인에게 제대로 수용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일본의 여론조사는 보여주고 있다.

중국은 한국과 같이 근대 일본 제국주의의 가장 큰 피해 당사국이다. 중국정부는 일본의 대 중국 과거사 문제를 비판할 때 일본의 군국주의자와 일반 시민을 철저히 구분한다. 일본의 침략전쟁과 각종 반인륜적인 행위는 일부 군국주의자에 의해 자행되었기 때문에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지 일반 시민에게 책임을 추궁해서는 안 된다는 논리이다. 중국정부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 내 많은 '친중파' 시민을 획득했고, 그것이 중일관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한국정부가 '반 아베'와 '반 일본'을 구분하지 않고 정책을 펴게 되면, 한국과 우호를 유지하려는 시민의 힘을 약화시키고 오히려 '친 아베' 세력을 도와주게 된다. 그렇게 되면 현재의 한일 갈등 국면은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되며 그 피해는 고스란히 양국 시민이 떠안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