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볕에 곡식과 책을 말리다

 

▲ 暴(말릴 폭)에 햇볕(日일)을 강조하여 만든 글자가 曝(볕에 쬘 폭)이다. /그림=소헌

 

 

기승을 부리던 장마가 꼬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더위가 찾아올 것이다. 도시인들은 휴가를 떠날 채비를 하겠지만 농촌은 지금부터 가장 바쁜 시기를 맞게 된다. 메밀 파종, 보리 수확, 고추밭매기는 물론이고 병해충을 막아야 하는 등 농부들은 쉴 틈이 없다.

"장마를 겪었으니 집안을 돌아보아 곡식도 거풍擧風하고 의복도 포쇄曝하소." 농가월령가 한 구절이다. 농부는 곡식을 말리고, 부녀자는 눅눅해진 옷가지를 말리고 장독의 뚜껑을 열어 장을 햇볕에 쐬어 말리며, 선비는 책장에 쌓아둔 책을 꺼내 말리는 풍습을 서술했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포악暴惡한 처사다. 이에 폭염暴炎보다 뜨겁게 분노가 터져 나왔다'에서 쓰인 글자 暴(포/폭)의 발음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자.

포염폭서(暴炎曝書) 볕이 쨍쨍한 불볕더위에 책을 꺼내 말리다. 포염暴炎은 매우 뜨거운 더위며, 포서暴暑는 매우 사나운 더위다. 어떻게 말하든 '한더위' 또는 '불볕더위'라고 한다. 폭서曝書는 폭쇄曝라고도 한다. 관청에서는 '폭쇄별감'을 따로 두어 책을 관리하였다.

暴 포/폭[사납다(포) 흉악하다(폭) / 말리다(폭) 쬐다(폭)]
1暴(포)는 햇볕(日)이 사납게 비추어 논밭을 말릴 때에는 손 모아(+공) 비(수)를 내려달라고 빌며 제사지내는 모습으로서, 해(日)로 가물게 하고 동시에(共공) 물(수)로 홍수를 나게 하는 재앙은 무척 사납다. 2暴(폭)은 구름에 가려진 해(日)가 나오니 두 손으로 받들어(共공) 곡식( 米미. 변형)을 밖으로 내어놓고 말리는 모습이다. 3성질이 모질고 흉악한 행위를 나타낼 때는 '포'로 발음하고, 젖은 것을 말린다는 뜻으로 쓸 때는 '폭'으로 발음해야 한다. 따라서 暴炎폭염은 '포염'이 옳으며, 曝포쇄는 '폭쇄'가 옳다. 4햇볕에 쬐는 글자인 暴(포)가 점차 '사납다'고 쓰이자, 해를 강조하는 日을 넣어 새로 만든 글자가 曝(쬘 폭)이다.

書 서[글 / 책]
1書(서) 붓(사)을 손()으로 들고 글(曰왈)을 쓰는 모습이다. 2붓(聿율)을 들고 종이(一)에 그림(田)을 그리면 畵(그림 화)가 되며 3글이고 그림이고 할 것 없이 붓(聿율)은 해(日일)가 떠있는 낮에 잡고 작업(一)해야 한다. 이 글자가 晝(낮 주)다.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만해 한용운의 시詩 '알 수 없어요'의 한 구절이다. 조국광복을 위해 저항하며 노래한 위대한 선생은 남향으로 집 터를 잡으면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게 되어 이를 거부하고 반대편인 북향터를 선택했다.

대통령이 일본의 조치에 즉각 대응하기 위해 휴가를 반납하였다. 아쉽지만 이때라도 내외 정치문제에서 한숨 돌려 '민족언어'에 대하여 구상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한다.

/전성배 한문학자·민족언어연구원장·'수필처럼 한자'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