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준 인천대 중어중국학과 교수

1919년 5월4일, 베이징의 톈안먼 광장에 수천 명의 청년 학생들이 모여들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중국인들은 전쟁 중에 일본에 빼앗겼던 산둥반도에 대한 권리를 되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파리강화회의에서 열강들은 산둥반도에 대한 일본의 권리를 승인했다. 연합국의 승리를 '강권(强權)에 대한 공리(公理)의 승리'로 평가하며 낙관적 기대를 품고 있었던 중국인들은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강화회의의 소식이 중국에 전해진 다음날 베이징의 청년 학생들이 행동에 나섰다.

5월4일부터 시작된 시위는 중국 전역의 대도시에서 한달 넘게 계속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학생들 외에도 노동자와 상인 등 다양한 계층의 중국인들이 운동에 가담했다. 이들은 일본상품 불매운동을 전개하면서, 베르사유 조약 조인 거부, 친일파 관료 처벌, 체포된 학생의 석방 등을 요구했다. 강렬한 저항에 직면한 중국 정부는 결국에는 이러한 요구사항들을 수용했고, 중국 대표단은 조약에 서명하지 않았다.

5·4운동은 중국 현대사에서 민중이 근대적인 대중운동의 방식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다. 5·4운동의 핵심 주체였던 청년 학생들은 1915년부터 계속된 '신문화운동(新文化運動)'이라는 계몽운동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세대였다. 5·4운동은 이들의 문화적 각성이 정치적 각성으로 발전한 결과였고, 이러한 정치적 각성은 민족의 위기 앞에서 강렬한 민족주의로 표출됐다.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이 각각 1920년과 1921년에 창당된 것도 이러한 시대적 맥락과 무관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5·4운동은 일회성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았고, 중국 현대사를 통해서 다양한 형태로 재현되어 왔다.
해마다 5월 4일을 전후한 시기가 되면 학생들은 5·4운동을 기념하면서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제기했다. '민주'와 '과학', '자유' 등으로 상징되는 5·4운동의 정신은 통치 권력이나 외세의 침탈에 맞서는 저항의 정신이기도 하였다. 학자들에 따라서는 1989년의 톈안먼 사건도 5·4운동의 연장선에서 이해하기도 한다.
올해로 5·4운동은 100주년을 맞았다. 중국 현대사의 기념비적인 사건의 100주년치고는 매우 조용하게 지나고 있는 모습이다. 중국공산당으로서는 청년 학생의 정치적 각성과 저항 정신을 대대적으로 고무하는 것이 불편하기도 할 것이다.

마오쩌둥이 5·4운동 이후의 중국 사회를 '신민주주의 혁명'의 단계로 평가하며 5·4운동에 역사적 의의를 부여했던 것을 떠올려보면, 현재 상황이 참으로 모순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5월5일자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 기사에 따르면, 5월4일에 베이징 대학에서 '오사운동연구센터(五四運動硏究中心)'가 설립되었다고 한다. 중국공산당 베이징시위원회 산하의 교육공작위원회와 베이징 대학이 공동으로 설립한 연구센터로서, 5·4운동 이후의 정치사, 사상사, 문화사, 사회사 등 제반 영역을 포괄적으로 연구하는 새로운 플랫폼을 구축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러한 학술적 목적과 별개로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바로 중국공산당이 5·4운동과 그 정신의 시대적 의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의 문제이다. 베이징시위원회 교육공작위원회 서기인 왕닝(王寧)은 연구센터 설립의 시대적 의의를 다음과 같이 규정하였다. 그는 5·4운동의 역사적 의의와 영향을 강조하면서,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청년운동'에 주목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새로운 시대의 중국 청년운동'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5월4일자 중화망(中華網) 기사에서는 그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즉 청년들이 5·4운동의 정신을 발휘하여 '시진핑 신시대(新時代)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사상'의 기치를 높이 들고, 지도부를 따라 역량을 결집해 중국 청년운동의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요컨대, 시진핑과 중국공산당 지도부를 따라 당과 국가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하라는 것이다.

5·4운동의 정신과 그 시대적 의의는 시간과 장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1919년 5월4일에만 주목한다면 5·4운동의 정신은 사실상 민족주의에 국한되지만, 1919년 이후 100년간 면면히 이어져 온 5·4운동의정신은 민족주의를 넘어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를 모두 포괄한다. 5·4운동을 '새로운 시대의 청년운동'과 연관 짓는 모든 시도는 5·4운동의 정신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