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을게' … 아이들에게 한 약속 이제는 지킬 때
▲ '예은 아빠' 유경근 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안산시 단원구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회의실에서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범인이고 진상규명 방해자"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해상교통사고' 프레임서 벗어나
범죄로 인식하자 보이는 정황들
재조사·수사 반드시 필요한 이유
국민들 청원·서명에 동참해주길

'배가 침몰했다' 초점 맞추기보다
304명 목숨 앗아간 참사로 인식
되풀이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
희생자 기억하고 약속 지키는 일






"마치 누가 구하지 말라고 한 명령을 그대로 수행하는 것처럼, 아무도 구조를 시도하지 않았다."

'예은 아빠' 유경근 전 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세월호 참사 당시 상황과 교신기록, 모든 영상, 해경·승객·선원 증언 등을 종합하고 조사한 후 이를 기반으로 구조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해 내린 결론이다.

"배가 침몰하기 전까지 최소 1시간30분이라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 시간이면 승객들이 모두 탈출하고도 남아요. 그런데 대다수 승객은 탈출하지 못했어요. 1시간동안 12차례나 방송을 하면서 배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에요. 현장에 오전 9시35분에 도착한 해경은 어느 누구도 배안으로 진입하지 않았을뿐더러 배 밖에서도 승객들이 탈출하도록 지시하거나 유도하지 않았죠. 한마디로 구조를 하지 않은 거에요. 생존자 어느 누구에게도 배안의 상황에 대해 물어본 구조대원들이 없어요. 불과 몇미터 떨어진 중앙홀(안내데스크)을 지나쳐요. 그 안에는 30~40명들이 그 대원을 발견하고 살려달라고 했지만 힐끔 쳐다본 후 아무 말도 없이 다른 곳으로 가버려요. 그 모습이 영상에 있어요. 이해가 되세요?"

그는 세월호 참사의 본질은 단순히 304명이 죽은 대형사고가 아니라 '당연히 살아야할 사람이 죽었다'는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제대로 된 진상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현실에 분노했다.

그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범인이고 진상규명 방해자라고 규정했다.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시민들은 세월호 참사를 범죄로 보고 있는데도 당시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한 해상교통사고 수준으로 취급했고, 그때 만든 교통사고 프레임이 아직도 살아남아 진상규명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프레임을 벗어나야만 진상규명이 이뤄질 수 있다고 판단했다.

우선 시각부터 바꿨다. 세월호 참사는 범죄라는 것. 범죄기 때문에 증거를 인멸하거나 감추려는 가능성까지 상정해놓고 원점부터 모든 사안을 검토했다.

그러다 보니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세월호 CCTV DVR 은폐·조작에 대한 단서를 발견했다는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의 조사 중간발표를 뒷받침할 결정적인 자료를 제공할 수 있었다.

그는 그동안 검찰이 잘못된 증거와 편향된 증거를 갖고서 끼워맞추기식 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확인하는 계기라고 평가했다.

"(증거들이) 아예 없었던게 아니라 우리가 볼 생각을 안한거에요. 질문을 바꾸고 시각을 바꾸고 나니까 거기에 나타났던 아주 작고 미세한 정황들이 의미있게 보이기 시작했죠. 이게 뭐지 파고 들어가다 보니까 구체적인 정황이 드러났어요. CCTV DVR 조작 및 원본이 아닌 가능성, 선원들이 서로 짜고 입을 맞춘 정황 등을 찾을 수 있었죠."

이게 세월호 참사의 전면 재조사와 재수사를 요구하는 이유다.

우리 사회가 올바르게 나아가기 위해라도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원인을 밝혀야만 대책도 수립할 수 있고, 그래야만 우리 사회도 혼란을 끝내고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는 2014년 4월16일 이전과 이후는 달라져야 한다고 강변했다.

특히 세월호 참사때문에 생긴 전국민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전국민이 몇 날 며칠을 사람들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과정을 생중계로 지켜보면서 생긴 트라우마 말이다.

"세월호 참사를 직접 본 국민들의 트라우마는 클거에요. 국민들에게 '아무도 날 구해주지 않을거야', '내가 스스로 살아야 돼'라는 인식이 박혀버렸죠. 지난해 서울지하철 사고를 기억해보세요. 당시 기관사가 '안내할 때까지 대기해달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듣는 승객들은 '대기하라고, 말도 안되지'라며 비상문을 열고 나와버렸어요. 다행히 사고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만약 반대편 선로에서 열차가 들어오고 있었으면 정말 큰일 날뻔했죠. 즉 아무도 말을 듣지 않는 세상, '기다려라 대기해라'라는 말이 먹히지 않는 세상이 된거죠. 이게 슬프기도 하고 화가 나요. 이게 모두 세월호의 영향이에요. 하루 빨리 진상규명이 나와야 하는 이유에요. 이것이야 말로 전국민의 트라우마를 가장 빨리 치유하는 길이에요. 우리 사회를, 정부를, 구조대원을 믿어도 되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야죠."

또 아이들에게 했던 약속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대다수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 아이들에게 '잊지 않고 기억할게', '억울한 거 풀어줄게', '이제 안전한 세상 만들게', '어른이라서 미안하다'라는 수많은 약속을 했다.

"이제는 이런 약속을 우리 어른들이 지켜야 해요. 약속을 지키는 길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거에요. 그런데도 아직도 세월호 참사 대책이라고 나오는 게 겨우 구조훈련 강화, 구조장비 확충 등에 불과해요. 심지어 어떤 전문가들은 세월호 참사 대책이라고 내놓은 게 국민 안전의식 고취, 선박 안전관리, 운항 관리 등을 내놔요. 이는 세월호 침몰사고의 대책이 될수 있지만 참사의 대책은 아니라는거죠. 다시 말하지만 세월호 참사는 배가 침몰한 사건이 아니고 304명이 죽지 않아도 되는 상황에서 죽어버린 참사에요. 우리가 이를 명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해요. 이는 모두 진상규명이 안된 탓이에요. 왜 사람들을 구하지 않았는지 밝히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헷갈려 하는거죠."

5년 전부터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수사와 재조사 청원이나 서명에 국민들이 동참해주길 바라고 있다.

오는 16일까지 20만 국민청원, 10만 국민서명을 받는 것을 목표로 잡았다.

"그렇게 되면 청와대가 결단하고 검찰이 제대로 시각과 의지를 가지고 수사에 나설 수 있어요. 우리 입장에서는 10년이 걸리건 100년이 걸리건 끝까지 하겠다는 각오는 있어요. 물론 그 말이 100년동안 하겠다는 말은 아니에요. 의지와 각오, 우리 자세를 말한거죠. 우리 사회를 위해서라도 세월호 진상규명을 최대한 빨리 끝내야 해요. 우리 사회로서도 바람직한 일이에요. 5년 전 그 약속, 이제는 지켰으면 좋겠어요."

그래야만 추진되고 있는 세월호 생명안전공원에 진정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봤다.

"정부는 추모공원, 추모비 등을 세울 때 흔히 그 사건을 끝내기 위한 것으로 악용했어요. 하지만 우리들이 원하는 추모사업은 그게 아니에요. 세월호 추모공원인 생명안전공원을 멋지게 만들고 싶어요. 멋지다는 게 단순히 큰 건물이 들어서고, 잔디도 깔고 나무도 심고 등의 외형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의미를 담고 싶은거에요. 그런데 지금도 세월호 참사가 왜 일어나는지 모르는데 거기서 무슨 교훈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게 안되면 공원에 담길 내용은 뻔해요. 안전의식 고취 이거밖에 할 게 없죠. 결단코 세월호 승객이 안전의식이 없어서, 모자라서 희생당한 게 아니에요. 우리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교훈을 후손에게 남겨줄 것을 고민해야 됩니다. 그게 진정으로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기억하고 약속을 지키는 일이에요. 우리는 이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