쌓여가는 친구들 생일선물 마음 아파 … 더는 챙길 수 없었죠
▲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사무실에서 만난 생존학생 설수빈(여·23)씨가 당시 상황을 침착하게 설명하고 있다. /김철빈 기자 narodo@incheonilbo.com


참사 후 생일 일일이 챙겼지만
돌아오지 못한 친구 눈에 밟혀
이젠 '그날에만' 기억교실 찾아

악성 댓글로 힘들었던 시간들
따뜻한 위로로 세상 밖에 나와
참사 가족협의회서 모은 자료
전산화하며 진실규명 힘 보태

"이제 그만 해라" 주변서 듣지만
원인 명확해야 대책도 만들어







"세월호 참사 5주기가 다가오는데도 아직도 참사가 일어난 날을 모르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꼭 그날만은 기억해줬으면 좋겠어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 생존자 설수빈(23·당시 단원고 2학년 1반)씨가 다시 세상으로 나온 이유다.

그는 그날의 기억에 한동안 방안에만 갇혀 살았다. 그저 멍한 상태였다. 성인이 돼도 그대로였다.

생존한 친구들도 마찬가지다. 이제야 단원고를 다녔다는 사실까진 밝히고 있지만 아직도 자신들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

"제가 본것은 아니지만 같은 조의 친구가 배 비상구를 처음 열었는데 해경이 바로 앞에서 '어 나왔네'라는 말을 했대요. 어떻게 말했는지 정확하게 기억이 나지 않지만 비슷한 말이었어요. 아직도 대다수 친구들은 그때의 상처를 가지고 있어요."

참사 초기에는 참사를 당한 친구들의 생일을 챙겼다.하지만 해가 갈수록 쌓여만 가는 생일선물을 보니 그마저도 못했다.

3주기때부터는 참사일에 맞춰 편지와 직접 만든 기억물품을 전해주고 있다.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상처가 조금 아물고 나니 이제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이 눈에 밟힌 탓이다.

"(참사를 당한) 비슷한 사람끼리 이야기를 나누니 공감도 되고, 위로가 돼 점점 추슬러지는 것 같아요. 상처가 아물어가니까 이제는 돌아오지 못한 친구들이 눈에 밟히네요. 이게 가장 힘들어요. 그래서 생일선물도 전달하지 못하게 됐죠. 이후 생일을 챙기기보다는 참사일에 맞춰 손편지와 손수 만든 기억물품을 전달하게 됐어요. 주기마다 기억교실에 선물을 놔두고 오는거죠. 그런데 이것도 기분이 괜찮다 싶을때만 하는 거에요. 기분이 처질때는 못하는 거죠. 아무래도 그 시기에는 감정이 복잡해지고 기복이 심해지니까요. 어느 정도 떨쳐버렸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쉽지만은 않네요."

그가 세상에 나오는 용기를 낸 데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이 전만 하더라도 악의적인 댓글로 상처만 더 커진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친구들은 다 죽었는데 왜 너는 살아남았지' 또는 '친구들 팔아 대학교 가냐', '돈을 얼마나 받으려 하냐' 등등 부정적인 댓글에 마음이 아팠죠. 보기 싫었지만 보게 되더라구요."

그러나 이제는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악성 댓글이나 부정적인 말에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에게 힘을 돋아주는 말이나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는 사람들이 더 먼저 눈에 띄기 때문이다. 검은도화지에 흰색점을 콕 찍은 것처럼.

"이제 상처가 되는 말에 무감각하다고 해야 되나, 관심이 없다고 해야 되나. 왜냐면 부정적인 글이나 말보다 저에게 힘을 돋워 주는 말이나 따뜻한 사람들이 더 눈에 띄기 때문이에요. 검은도화지에 흰색점이 콕 찍힌 느낌이랄까. 흰점만 보여요. 그 흰점을 멀리서 보면 하나로 보이지만 가까히 다가가면 무수히 많은 별로 이뤄진 것처럼, 크기도 제각각인 것처럼 그냥 곳곳에 있는 것 같아요. 세월호가 저에게 큰 아픔이면서도 큰 경험인 것은 바로 이같이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세상에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악성댓글을 보면 분노하기보다는 그들을 보듬어주고 싶은 마음이 먼저 생겼다. 혹시 자신과 비슷한 상처를 가진 사람들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익명을 앞세워 좋지 않게 이야기 하는 것 자체가 스스로에게 뭔가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게 콤플렉스일수도 있는데 아마도 그 사람도 힘들 거 같아요. 마음이 힘드니까 그렇게 분풀이를 하는게 아닐까라고 생각하죠."

그는 초등학생때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해 한양대학교에서 일본어를 공부하고 있다. 올해는 휴학중이다.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다.

"초등학생때부터 원피스, 나루토 등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다 보니 일본어에 관심이 가더라구요. 자연스레 일본어를 하게 돼 대학교에서도 일본어전공을 선택하게 됐어요. 2학년까지 마쳤는데 올해는 그냥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어학쪽이 적성에 맞지 않는 생각도 컸구요. 엄마에게는 공부한다고 했는데 간신히 설득해 휴학을 하게 됐죠. 아직 진로를 정하지는 못했어요. 내년에 복학할 생각인데 그전까지는 고민해봐야죠."

그러면서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에서 일하고 있다. 협의회의 요청때문이다.

그는 5년 동안 모아온 생존학생 자료, 초기때 기록, 진도체육관·고려대병원·연수원·학교·올림픽기념센터 등의 기록, 내부회의자료 문건 등의 세월호참사 자료들을 분류하고, 이를 전산화하는 작업을 돕고 있다.

수많은 자료를 보다보니 답답함은 더 커졌다. 덩달아 책임감도 같이 생겼다. 자신이 겪었던 일에 대한 의문점이 해소되지 않아서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그만해도 되는 거 아니냐는 말을 해요. 아마도 진상규명이 늦어져서 해마다 되풀이되기 때문에 그러는 것 같아요. 이것을 보는 사람들도 뭔가 답답함을 느꼈을 거 같아요.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잖아요. 구조를 못했다면 이유가 있을 거잖아요. 그래도 조금씩 뭔가 밝혀지고 있으니 기다리다 보면 진실이 밝혀질 거에요. 원인이 명확하게 나와야 대책도 만들 수 있잖아요."

/최남춘 기자 baikal@incheo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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