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땅을 핫 플레이스로…빈 공장을 문화 아지트로
▲ 심기보 신진말 대표.

 

▲ 심기보 신진말 대표.


"이곳 '신진말' 일대는 원래 저희 청송 심씨 가문이 300년 넘게 살아온 집성촌이었는데 대대로 내려온 땅을 돈 버는데만 쓰지 않고 선조들이 그랬듯이 지역사회를 위해 쓰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집안 어른들께 말씀드렸더니 '한번 해봐라'하시면서 흔쾌히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고택은 복원하고 좋은 건물을 지어 주민과 함께 공간을 나누며 문화도 공유하자고 시작한 게 '신진말 프로젝트'입니다."

인천 서구 가좌동 가재울 사거리와 경인고속도로 사이의 공장지대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하는 '신진말 프로젝트'를 주도하고 있는 심기보 대표는 "이 일대가 60~70년대부터 티타늄을 생산하던 화학공장, 사료 공장, 목재소 등 크고 작은 공장이 들어서고 오래 된 아파트나 빌라가 혼재해 있어 문화는 보이지 않고 황량한 기운이 감돌았습니다. 동네 한 켠에 100년된 청송 심씨 문중의 한옥도 덩그러니 자리만 지키고 있을 뿐 방치되다시피 하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보스턴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며 금융관련 업무나 경제학 공부를 더 하려던 심 대표는 2008년 국제금융위기에 학업을 중단하고 귀국길에 올라야 했다.

"신진말은 사실 저희가 명절 때나 오던 큰집이 있던 동네였습니다. 어릴 때는 '참판댁'으로 불리던 한옥과 동네를 별다른 생각없이 오고가곤 했는데 미국에서 돌아와 오래된 한옥이 황량한 공장지대에 있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하고 사명감이나 의무감이 들어 제대로 복원부터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문화공간이나 문화지대니 하는 거창한 프로젝트라는 개념은 아예 없이 단순히 한옥 복원을 위해 집안 자료를 찾다보니 이곳이 바닷가여서 '바다가 보이는 집'이라는 뜻의 '관해각(觀海閣)'이란 현판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했습니다. 한옥 복원은 내년 봄에 완공될 예정인데 앞으로 '관해각'으로 명명할 예정입니다."

신진말은 과거 바닷물이 들어오던 바닷가의 새로운 포구란 의미로 지어진 동네이름이다. 심 대표가 본격적으로 신진말에 관심을 갖고 고민을 하게 된 것은 동네 사람들이 '이곳은 낙후되고 뒤떨어진 곳'이라는 부정적 의식을 갖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 뒤부터다.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주어 운영하던 음식점을 인수해서 제주산 돼지고기 전문점 '신진말'을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터가 넓어 '파빌리온'이라는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한옥 복원에 맞춰 지붕은 기와지붕과 같은 모양을 살렸고 천정은 보와 서까래도 맞물렸습니다. 기둥을 하나도 없게 한 이유는 평소에는 단체손님을 받지만 동네 문화센터에서 공연이나 발표회, 결혼식 등 사람들의 다양한 활동을 담아낼 수 있도록 제공할 예정인데 이미 프리마켓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심 대표는 우연한 계기로 대지 경계를 측량하다가 가게 터와 바로 붙어 있는 곳에 폭 4m, 길이 20m밖에 되지 않는 자투리땅이 가문의 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공간이 지닌 역사와 특성을 생각해 이곳을 지역 사람을 위한 열린 공간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기왕 짓는거 근사하고 멋있는 건물을 짓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동네가 하도 '후졌다' 또는 '별 볼일 없는 곳'이라는 말에 자존심이 상해서 주변사람들이나, 무엇보다 어린이들에게 '우리 동네에도 이렇게 이쁜 건물이 있구나' 하는 보는 눈을 높여주고 싶었습니다. 한옥과 파빌리온 등의 의미를 들은 건축가가 '빈 책꽂이에 책 한권 꽂는 심정으로 설계했다'고 들었습니다. 입구가 동쪽과 서쪽에 각각 두었는데 대로변에 가까운 동쪽 입구는 1층에 만들고 진입로 주변에 한옥에서 가져온 기와를 돌담처럼 쌓았습니다. 서쪽 입구는 계단을 설치해 2층으로 진입하도록 설계했는데 계단을 지그재그로 놓아 오르고 내릴 때 나중에 복원될 한옥을 보는 시선이 달라지게 했습니다. 저의 뜻과 계획을 잘 살려준 건축가에게 감사하고 있습니다."

건물이 세워지고 유명 커피전문점인 '빈브라더스'가 입점하자 기대보다 훨씬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홍대에서도 가장 핫하다는 커피전문점이 들어서자 20~30대 고객들이 늘고 먼 곳에서 차를 끌고 일부러 찾아와서 멋있게 꾸며진 건물을 보고 감탄하는 사람들도 많아지면서 동네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빈브라더스가 건물을 살려준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성훈식 대표를 만난게 저에게는 큰 행운이자 운명같은 만남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리스타 과정 교육 때문에 만났는데 제 뜻을 들려주자 의기투합해서 지금은 화학공장을 재생해서 문화공간으로 만든 '코스모40'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코스모40'은 본래 이산화티타늄을 생산하던 코스모화학의 공장건물이었는데 지난 2016년에 울산으로 이전했다. 가좌동 일대에 45개의 공장이 있었는데 40번 공장을 매입해 '코스모40'이라 이름 붙였다. 오래된 공장이지만 현대식 건물로 보이게 외벽의 구조물을 유리로 처리했다. 심 대표와 성 대표의 의도를 들은 건축가는 "옛 건물을 그대로 사용하되 새 건물을 끼워 넣는 식의 증축방식을 사용하고 내부의 산업 구조물 그대로 살려 역사적 가치는 지키고 새로운 것을 옛 것에 조화시켰다"고 밝혔다.

"비어진 공장이야말로 경쟁력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했습니다. 4층 규모의 '코스모40'은 수직공간이 효율적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에 1·2층에서는 프리마켓을 벌이고 3·4층에서는 영업행위를 하면서 공연이나 전시도 할 수 있어서 동시다발적인 행사가 가능한 구조가 장점입니다."

지금까지 완성된 '신진말 프로젝트'는 청송 심씨 고택인 한옥을 중심으로 미국 정통식 바비큐 전문점 '파운드'와 빈브라더스, 음식점 '신진말', '코스모40'이 벨트 모양으로 둘러싸여 있는 형상이다.

심 대표가 '신진말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은 공간이다. 일부러 각 건물마다 크고 작은 공간을 마련했다. 300년이 넘는 문중 터전의 주변에 현대를 살고 있는 지역 주민들이나 문화단체들이 언제나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해서 '공간 나눔'과 '문화 나눔'이 이뤄지기를 바라고 있다.

"제가 서울서 자랐기 때문에 이 지역에 대한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없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공장지대를 재생해서 세운 복합문화공간이라는 거창한 의미보다 작은 규모라도 저희 집안에서 오래전부터 해왔던 것처럼 지역사회와 함께 나누고 싶은 소박한 마음입니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300여년을 살았는데 앞으로 300년 이상을 보고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조금씩 이뤄갈 수 있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사진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심기보 신진말 대표는 …

▶서래초등학교
▶방배중학교
▶美 Lawrence Woodmere Academy(고등학교)
▶美 Boston College(수학 전공)
▶2006년 병장 만기제대
▶2008년 신진말 대표
▶2018년 코스모40 설립


청송 심씨 고택의 역사

"청송 심씨 영의정 한효공 휘온의 십대손 심공 한웅(1652년생)이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하였고 1940년 그의 팔대손 심공 상필과 그의 자 심공 운섭이 삼년간에 걸쳐 증축공사를 했다. 이 공사를 위해 백두산에서 한국송재목을 벌채하여 압록강 신의주까지 뗏목으로 운반 후 경의선 철도와 경인선 철도로 인천까지 운송하였으며 지붕의 기와는 서해 영흥도에 있었던 병자호란시의 충신 임경업 장군의 사당이 오랜 풍상으로 쇠락하여 헐리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그 기와를 배 세척으로 운반하여 이 집의 기와로 삼았다. 1950년 6·25사변 때에는 인천시민 수만명이 갯벌나루를 건너 서구 가좌동 일대에 피난하여 왔을 때 이 집에 삼십여 가구가 거주하였고 이집의 우물은 마르지 아니하여 피난민들의 극심한 식수난을 해결할 수 있었다. 1950~1960년대에는 인천중학교, 제물포고등학교 길영희 교장선생 주도로 인중, 제고, 서울고교, 인일여고, 송도고교 학생들의 특별활동의 장소로 사용했다. 당시 특별활동으로는 문맹퇴치운동, 미취학아동교욱, 가좌울 야학당, 보이스카우트 활동 등이 있었다. 1967년에는 정부의 농어촌 전기공사 추진사업 당시 인천 서구 전기추진위원장이었던 심공 한웅 십대손 심재갑은 이집에 김정렴 상공부장관을 초청하여 서구전기추진위원회를 계획하여 이곳을 거점으로 하여 인천서구지역의 전기공사를 추진하였다."(한옥 안내판 내용 중 일부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