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

 

 

늦은 밤 잠 못 드는 아이를 달래려고 컴컴한 방 한켠에 작은 후레쉬를 켰다. 새도 만들고, 강아지도 만들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며 손을 놀리니 아이가 아주 재미있어 한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던 유년의 기억이 떠올랐다. 저녁에 아저씨들이 마을 언덕에 올라 커다란 발전기를 켜면 '텅텅' 시끄러운 엔진소리를 뒤로 하고 마을이 잠시 밝아졌다. 우리는 엎드려 신기한 듯 텔레비전을 구경하였고, 어머니는 아버지의 옷을 다림질하거나 모터를 이용해 사용할 물을 받아두었다.
두세 시간쯤 지나고 전구가 몇 번 깜빡거리다 금세 암흑으로 바뀌고 나면, 할머니가 등잔을 조용히 켜고 이런저런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우리는 등잔불 아래에서 그림자를 만들며 그 이야기 속 주인공들이 되어 갔다. 고요한 방에 할머니의 나지막한 음성과 함께 우리 웃음소리가 그곳을 더 환하게 비추곤 했다. 그림자놀이는 등장할 수 있는 캐릭터가 적다 보니, 읊을 수 있는 이야기가 항상 다르다.
상황에 따라 달라져 정해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 뻔한 이야기를 읽어주는 동화책보다 훨씬 더 재미있는 듯싶다. 아이는 안중에도 없이 혼자 신이 나서 놀다 보니 쌔근쌔근 잠든 아이의 숨소리가 들린다.
내일은 또 무슨 이야기를 만들어 볼까. 재미있는 그림자들이 내 꿈에서도 만나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