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동원의 기억이 엇갈리고 있다.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을 내린 가운데 국내에 유일하게 강제동원 흔적이 남은 인천 부평 '미쓰비시(삼릉·三菱)' 줄사택은 추가 철거를 눈앞에 두고 있다.
부평구는 이달 중순 부평2동 주민 공동 이용시설 건립 부지에 있는 미쓰비시 줄사택 4채를 철거할 예정이라고 4일 밝혔다.

미쓰비시 줄사택 70여채가 남아 있는 삼릉마을에선 취약지역 생활여건 개조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노후 주택을 개량하고, 주민 공동 시설을 짓는 내용이다. 부평2동 행정복지센터 이전과 주차장 조성도 예정돼 있다.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줄사택은 역사의 뒤안길로 밀려나고 있다. 87채가 남았던 줄사택은 지난해 말 17채가 헐렸다. 내년 초 착공을 앞둔 주민 공동 시설 자리의 4채는 철거 준비 작업 중이다. 구 관계자는 "사업 진행 상황을 봐야 하기 때문에 아직 전면 철거 여부는 확실치 않다"고 말했다.

미쓰비시 줄사택은 남한 땅에서 유일하게 강제동원 흔적을 간직한 곳으로 꼽힌다. 1930년대 후반 일본계 기계회사 '히로나카 상공'은 지금의 부평공원 자리에 대규모 군수공장을 지으면서 경인철도 남쪽에 숙련공 양성소와 노동자 사택을 뒀다. 1942년 미쓰비시 중공업이 히로나카 상공의 시설을 인수하면서 미쓰비시 제강 인천제작소로 바뀌었다.

해방 이후 미군이 점유했던 공장 부지에는 육군 정비부대가 들어섰고, 사택은 민간에 매각됐다. 공장 건물은 모두 199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사택 일부만 지금까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김정아 부평역사박물관 학예연구사는 "현재 확인된 미쓰비시 강제동원 작업장은 284개인데, 한반도에만 114개로 일본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며 "중국에는 사과·배상을 끝낸 일본이 국내 피해자들을 상대로 시간 끌기만 하고 있기 때문에 줄사택 현장 보존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부평구의 역사 인식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줄사택 일부를 생활사 마을박물관으로 조성하려던 계획을 접은 구가 주민을 설득하지 않고 행정 불신만 심었다는 것이다.

정혜경 일제강제동원평화연구회 연구위원은 "대법원 판결과는 정반대로 역사 유적이 철거되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라며 "구가 융통성을 갖고 접근하면 박물관까진 아니더라도 역사성을 보존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