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막한 아파트 숲 사이 꽃핀 주민 공동체
▲ 성남시 될성푸른나무 작은도서관에서 지역주민이 교육 봉사를 하고 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

 

▲ 시흥시 참새방앗간 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이 프로그램을 즐기고 있다. /사진제공=시흥시 참새방앗간 작은도서관


옆집에 누가 살던가? 이사 오는 날이면 떡을 돌리던 우리네 정겨운 풍습도 종적을 감춘 지 오래. 굳게 닫힌 문을 마주한 채 내 이웃에 대한 무관심은 소통의 단절과 공동체의 해체로 이어졌다.

하지만 작은 변화가 때론 굳게 닫힌 내 이웃의 문을 열게 만들기도 한다. 그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 이웃을 위해, 그리고 내 마을 위하는 마음들이 모여 만든 작은도서관, '될성푸른나무 작은도서관'과 '시흥참새방앗간 작은도서관'이 삭막한 도시 마을을 온정으로 물들이고 있다.

#아파트 유휴 공간의 색다른 변신
입구부터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여기저기 흩어져 저마다 세상 편한 자세로 책을 읽고 있는 아이들, 놀이터인 양 뛰어노는 아이들, 하지만 누구 하나 다그치는 사람은 없다. 이곳 아이들에게 모든 어른은 '이모'라 불린다. 이모들이 만들어 낸 작은 기적, 성남시 분당구 두산위브아파트 단지 내 위치한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은 이 지역 마을 주민들이 직접 일궈 낸 작은 도서관이다.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의 김윤숙 관장도 이 지역 마을 주민으로 도서관 내 사서직을 도맡으며 자원봉사에 나서고 있다.

"아파트 입주민들끼리 할로윈 행사를 열었는데 아이들은 물론 동네 어르신들까지 즐거워하셨어요. 그 이후로 이웃들과 자주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주민들이 뜻을 모아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을 만들게 됐죠."

4년 전, 70평 남짓의 아파트 유휴 공간을 활용해 문을 열게 된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은 도서관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지금은 7000권이 넘는 장서도, 여기 작은 의자 하나부터 저희 손을 안 거쳐 간 곳이 없어요. 창고 같은 허름한 건물을 탈바꿈하기 위해 주민들이 발로 뛰어다니며 일궈 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에서는 단순히 책을 읽는 공간을 넘어 이웃 간의 소통의 장으로써 역할을 확대해 가고 있다.

최근 도서관에서는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아파트 단지 내 광장에서 마을 주민들이 직접 참여한 '통통통 작은음악회'는 어느덧 4회째를 맞이하며 금곡동의 대표 운영 프로그램으로 자리하게 됐다. 특히 도서관에서 직접 운영하는 프로그램 가운데 '두드림(악기가 아닌 집기를 이용한 타악 공연)'은 이번 음악회를 통해 멋진 무대를 선보였다. 내 이웃들의 무대로 채워진 공연이라 더욱 뜻 깊었다.

될성푸른나무 도서관 자체 발간 지역소식지, '금곡통'은 누구도 몰랐던 우리 동네 소식들을 속속들이 전하면서 이웃 간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다.

재능 기부의 일환으로 주민이 직접 강사로 나선 '꽃꽂이', '영어독서' 등도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다.

특히 '협동조합 미래'와 함께 운영하는 사진교실 '장수사진촬영(영정사진 무료 촬영)'과 차상위 계층 아이들에게 제공되는 무료 증명사진 촬영 '미래 사진관'으로 공익 활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누구 하나 억지로 하는 사람은 없어요. 이제는 어엿한 '동네 형아·누나'가 된 우리 아이들이 또다시 도서관을 찾아 이 마을 어린아이들을 위해 자원봉사를 자처하는 걸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될성푸른나무 도서관의 초석을 다졌던 초대 관장이자 지금은 성남시의원이 된 서은경 의원은 이 곳 도서관에 남다른 애착을 가지고 있다.

"내 아이는 물론 이웃의 아이들에게, 또 주민들에게 편히 쉴 공간과 소통의 공간을 마련하고 싶었어요. 그러기 위해 부단히 노력을 해왔고 지금의 결실을 맺게 된 것 같습니다. 현재는 될성푸른나무 도서관과 같은 작은 도서관이 마을공동체 복원의 한 역할을 해주길 바라며 경력단절여성들에게는 또 하나의 일자리 공간이 되어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즐거워하면 그걸로 된 거죠
경기도 시흥시 시화삼성아파트에는 '한 번도 오지 않은 아이는 있어도 한 번만 온 아이는 없다'는 특별한 공간이 있다. 그곳은 PC방도, 놀이터도 아니다. 마을이 이뤄낸 기적, 작은도서관 '참새방앗간'과 이를 지켜가는 12명의 '곳간지기'가 온정을 잃어가는 척박한 도시 마을에 단비를 내리고 있다.

5년 전, 시화삼성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 운영이 중단되면서 먼지만 쌓여가던 잉여 공간을 보며 주민들은 고민에 빠졌다. 머리를 맞댄 주민들은 모두에게 필요한 공간으로 바꿀 것을 결정하고 이곳을 참새방앗간이라 부르며 문을 열게 됐다.

참새방앗간은 6000권이 넘는 장서를 보유하고 독서는 물론 미술교육, 영어 원서읽기, 독서토론과 역사토론, 보드게임, 우쿨렐레 강습 등 주민들이 다양한 문화 활동과 취미생활을 향유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처음에는 우리 아파트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주민들이 대다수였죠. 하나 둘 모여든 주민들은 참새방앗간의 활성화를 위해 허드렛일도 마다하지 않고 한마음 한뜻으로 나서 이곳을 가꾸게 됐습니다."

참새방앗간 한현주 관장은 혼자의 힘으로는 지금의 참새방앗간은 없었을 것이라 단언한다. 오로지 우리 아이들을 위해, 정왕동 시화삼성아파트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 마을 사람들을 위한 순수한 마음들이 모여 만든 남부럽지 않은 도서관이 바로 이 참새방앗간이라 주민들은 말했다.

도서관에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곳간지기 설정은 부관장은 "우리 도서관에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는 곳간지기들은 애착을 가지고 이곳을 꾸려 나갑니다"라며 "봉사활동을 하며 직접 자격증을 취득해 교육하기도 하고 전공했던 이력을 되살려 강의도 하며 작던 크던 저마다 가지고 있는 재능들을 아이들과 주민들을 위해 나누고 이웃 간의 돈독한 정을 다져가고 있습니다"고 전했다.

특히 누구의 강요가 아닌 주민들의 자발적인 봉사와 참여로 맺은 결실이라 주민들에게 참새방앗간은 특별하다.

한 관장은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내 아이는 물론 이웃의 아이들이 도서관에 드나들며 성장하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보람을 느낍니다. 마을 주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오세요"라고 말했다.
/박혜림 기자 hama@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