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균 인천서예협회고문·시인


거실의 전구가 끊어졌다. 동네를 한바퀴 돌아봐도 전기용품을 파는 가게가 한 곳도 없다. 어쩌면 아파트 관리실 또는 전기업자를 불러 수리를 해야겠지만, 내가 사는 곳은 도시 속의 깡촌이 아니고서야 이럴 수가 있나 싶다.
버스를 타고 마트에 갔다. 필요한 것을 사서 계산할 즈음 요즘 한창 혼밥족들에게 인기가 있다는 '햇반'을 박스째 들고 나오는 후배 연극인이 눈에 들어왔다. 몸을 감추고 한참 뒤에야 마트를 빠져나왔다. 그래 어떻게든 먹어야 살겠지. 규모 있는 밥상이 아니더라도, 연명까지야 들먹이지 않더라도 연극을 하려면 먹어야겠지. 예술(연극)도 먹고 나서 할 일이니까.
예술인 몇몇이 굶어죽은 기사가 엊그제고, 일명 '최고은법'이 문화예술계를 기름지게 할 것처럼 야단법석을 떤 일이 기억에 생생하다. 그렇건만 이렇다 할 만한 것이 없는 예술계에 최저임금은 어불성설, 꿈속의 이야기다.

'밥은 백성의 하늘'이라고 했고, '밥 한 알이 열 귀신 쫓는다'라고 했다. "밥 먹었냐" "진지 드셨습니까"가 인사였던 우리의 구수한 옛날은 다 어디로 가버렸는지 모르겠다.
어릴 적 기억으론 동네 뒷산 무덤 앞에 흰 쌀밥 한 그릇이 때마다 놓여 있곤 했다. 동그란 주발(周鉢)에 고봉(高捧)으로 담은 밥그릇이 무덤을 닮았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은 사람 무덤으로, 죽어서라도 배불리 먹어보라는 슬픈 풍경이다.

겨울날 고무신에 의지했던 언 발을 아랫목 담요에 들이밀면 딸가닥거리는 놋주발 뚜껑이 열리곤 했다. 하루 밥벌이 끝내고 오는 아버지 밥상에 따듯한 밥을 올리려고 담요 밑에 묻어둔 밥주발이었다. 고봉으로 푼 아버지의 밥주발은 가장의 위엄이었다. 식솔들에겐 고슬고슬 밥을 지어 먹이고 찬밥을 먹던 우리 어머니들…. 뜸을 들이는 밥솥에서 구수하게 나는 밥내 모성(母性)이었다.
임진왜란 피란기 '쇄미록'에는 전쟁통인데도 쌀 일곱 홉으로 밥 한 그릇을 지어 먹었다는 기록이 있다. 수북한 감투밥, 머슴밥, 고봉밥은 날마다 꾸는 '꿈의 밥'이었다.
지금은 피란기도 아니고 사람이 먼저라는 '인본주의' 시대다. 밥 못 먹어 굶어 죽는다는 말이 있을까. 한 끼니 햇반 하나(210g)로 때우며 예술을 하는 사람들. 하루 세끼(630g)를 먹는 그들이 정말 기적과 같다고 여긴다.
무대 한바퀴 휘 돌아서면 꺼지는 밥, 자기 얼굴 만한 그릇에 밥이 가득 담긴 1890년대 노동자들의 사진을 보면 굶주렸다고 하는 그 시대가 뭔지 몰라도 더 배부른 듯싶다. 그릇의 높이가 9cm, 그 위로 그만큼 올라가는 밥그릇의 지름이 13cm쯤이라면 요즘 밥공기의 세 배는 족히 되고도 남는 양이다. 밥은 곧 체력이라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가을 식은 밥이 곧 양식'이라는 우리 속담은 절약을 뜻하는 말이다. 예술인들이 극한 속에서도 몇 푼 안 되는 출연료를 절약해 1년을 먹고산다는 이 현실 속에서 예술인을 위한 복지가 제 이름을 찾는 날이 있기는 한지 암담하다. 역대 정부가 말한 예술인의 복지는 스트레스를 풀라는 일종의 이벤트로서 '모르핀 효과'밖에 가져온 게 없다고 예술인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2011년 제정, 2012년 11월 18일부터 시행된 예술인 복지법 1장1조에서는 '예술인의 직업적 지위와 권리를 법으로 보호하고 복지지원을 통해 창작 활동을 증진하는 것'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하나 사회보장 조항이 한정적이며 인정을 받더라도 건강·산재보험 가입이 불가능할 뿐더러 예술 활동을 하고 있다는 '증명'을 문제로 삼는다. 실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제외되는 '산 넘어 산' 같은 현실은 외국에 비하면 아직도 멀게만 느껴진다.

프랑스, 독일, 스웨덴 등 여러 국가에선 예술인 복지법이 시행된다. 영화나 연극 등의 제작이 끝나면 배우나 스태프들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제도를 운영하는 프랑스는 단기간 프로젝트 형식으로 일하는 예술인의 직업적 특성을 잘 고려하고 있다.
국내에서 1988년부터 시행해 3년 주기로 벌이는 '예술인 실태조사'에 나타난, '경제적 보상'에 대한 불만족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활동과 관련해 월수입은 매년 '없다'고 응답한 비율이 줄지 않고 있음이 안타깝다. 다소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점은 사회적 평가에 대한 문화예술인의 만족도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밥은 돈이 풀고 돈은 복지(법)가 푼다'는 등식을 두고 이제는 문화현장의 목소리를 듣는 '문화 협치'에 다가가기를 빈다. 하늘 같은 밥, 문화예술인들도 이제는 편히 먹어보자. 배부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