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열 경인교육대학교 기전문화연구소 연구위원


4년여 전 인천시교육청에서 일하는 간부에게 인천에서도 지역사 교과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지역 교과서 제작을 주문한 이유는 인천에서는 '자기 정체성'을 발견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인천지역 학생들에게 인천의 역사와 문화를 어릴 적부터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금처럼 인천에 정체성이 없다는 말들은 조금씩 사라지지 않을까 싶다는 말을 한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지만, 시교육청에서 지역 교과서(인증교과서)를 제대로 만들어 놓았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당시 시교육청에 몸을 담고 있던 그 간부도 지역 교과서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해 "그저 이야기가 담소거리로만 생각한 탓이 아닐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 '인천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말은 결국 자신이 인천 지역사를 이해하지 못한 방증이라고 판단된다. '인천 정체성이 모호하다, 내지는 없다'는 말을 생산·확대하는 사람들은 인천지역 역사와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않거나 알고자 하지 않은 부류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곧 지역의식이 부재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광복 이후 이른바 지방자치 맹아가 생겨났다가 이승만·박정희 정권으로 이어지면서 지역을 기반으로 한 역사의식과 자치의식이 발현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게 사실이다. 그나마 1991년 행정적으로 지방자치제도가 부활하면서 수면 아래에 놓여 있던 지역의식이 점차 생기를 되찾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교육청도 지역성을 기반으로 한 교육 행정을 펼쳐나갈 기회를 얻었지만,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육 행정 내용을 담아내는 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점은 제대로 된 지역 교과서를 발간하지 못한 데서 찾을 수 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시행정부와 시의회에서 온전한 지역 자치와 분권을 제도와 법 미비로 정착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실정이라지만, 시교육청은 지역을 기반으로 한 교육 행정을 펼칠 수 있는 여력을 갖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인천시교육청이 지역사 교과서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 앞에서 무슨 말을 해야 할까. 민주진영에서 시교육감이 선출되었을 때에도 지역사 교과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번에 새롭게 선출된 시교육감도 지역사 교과서 편찬에 대한 공약이나 언급을 전혀 하지 않았다.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인천은 우리나라 근현대사 자리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다. 그런 역사적 사실을 담아낸 지역 교과서를 편찬해서 학생들이 정규 교과 과정에서 배울 수 있도록 시간을 배정해야 한다. 그러면 지긋지긋하게 듣는, 인천에는 정체성이 없다는 말을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인천시교육청이 지역사 교과서를만들어 인천 지역사의 두터움을 학생들에게 일러줌으로써 지역 자치와 분권의 소중함도 일깨워주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고 본다.
인천 지역사 교과서(인증교과서)를 편찬하는 일 못지않게 그 속에 담길 내용도 매우 중요하다.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인천 지역사에 편입시키지 못한 인천의 인물, 인천의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 등도 지역사 교과서에 포함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온전한 인천지역 근현대사를 일궈낼 것이다.
인천지역 교육행정을 담당하는 시교육청이 당장 할 수 있는 일인데도 여지껏 하지 않은 것은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다.

지역 자치와 분권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부산시교육청은 2018년 부산 중학교 신입생들에게 '부산의 재발견'이라는 지역화 교과서(인증교과서)를 2만8000부 보급했다고 한다. 부러울 따름이다. 인천시교육감은 제대로 된 지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나서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