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희 인천대 중국학술원 교수

 

지난 7월19일부터 22일까지 중국 지린성 옌벤조선족자치주를 처음으로 방문했다. 자치주 수도라 할 수 있는 옌지시의 국제공항에 도착하자, 공항 간판에 위는 한글, 아래는 한자로 표기되어 있는 게 인상적이었다. 도로변에 내걸린 가로형 간판은 왼쪽에 한글, 오른쪽에 한자를 병기해 통일되어 있었다. 택시에서 나오는 라디오방송은 한국어 전용이었고, 호텔의 텔레비전에도 한국어 전용 방송이 흘러나왔다. 호텔 로비에 비치된 신문 가운데는 한글판 옌벤일보가 있었다. 가는 곳마다 조선족 동포를 만날 수 있어 이곳이 중국인가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이 자치주는 1952년 시작되어 1955년에 현재의 자치주로 바뀌었다. 현재 자치주는 6개시와 2개현으로 이뤄져 인구는 212만명에 달한다. 이 가운데 조선족은 1990년대 이후 한국과 중국 타 지역 이주로 인해 전체 인구의 3할 정도로 감소한 상태이다.

롱징시 방문 때 광활하게 펼쳐진 논을 보고 한민족의 끈기와 개척정신을 느낄 수 있었다. 원래 자치주를 비롯한 동북지역은 쌀농사가 되지 않는 곳이었다. 강우량이 적고 수원이 부족해 밭작물인 밀, 옥수수, 수수가 주요 곡식이었다. 조선족이 근대 들어 이 지역을 비롯한 중국 동북지역에 집단이주하면서 수원을 개발하고 수로 공사를 하여 쌀농사가 되는 땅으로 바꾸었다. 여기서 생산된 쌀은 근대시기 때부터 중국에서 맛있는 쌀로 유명했다. 요즘은 '동북쌀' 브랜드로 일반 쌀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된다고 한다. 옌벤대학은 1949년에 자치주를 이끌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되어 70년의 역사를 간직한 길림성 지역 명문 국립대학으로 발전했다.
대학 캠퍼스 뒷동산에 이 대학 초대 총장을 지낸 주덕해(1911~1972) 동상을 견학했다. 중국 건국의 해에 조선족의 대학을 세웠다는 것은 조선족이 얼마나 교육을 중시했는지 알 수 있다.

옌벤대학은 요즘 인기를 모으고 있다.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의 성공적 개최로 앞으로 남북교류가 활발해질 것을 전망한 한국의 각 대학과 기관이 옌벤대학과 관계를 맺으려 하기 때문이다. 옌벤대학은 설립 시 북한의 물적·정신적 도움을 많이 받았고, 북한의 대학 및 연구기관과 다년간에 걸쳐 지속적인 교류를 해왔다.
대학 내 설치된 각종 연구기관은 북한과 중국 간 정치적·경제적 관계를 연구하고 있고, 중국 정부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주목하고 있다. 옌벤대학은 북중 국경도시인 훈춘시에 제2캠퍼스를 조성하고 있어 향후 더 큰 발전을 기대하게 한다.

자치주는 두만강을 경계로 북한과 국경을 접해 있다. 옌지시에서 훈춘시로 가는 국도에서 북한 쪽 영토를 볼 수 있었다. 중국 쪽 강변과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강변이 잘 정리된 반면 북한 쪽은 그렇지 않았다. 도로도 없었으며, 민가와 군의 초소로 보이는 시설물이 보일 뿐 고즈넉했다. 훈춘은 북한, 중국, 러시아의 3개국 국경을 접한 도시이다. 훈춘은 3개국 국경지역 개발의 중심 도시로서 각광을 받았지만, 북한의 핵개발 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그러나 한반도 화해 무드 속에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는 등 변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훈춘시 소재 중국과 러시아 국경무역지구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관광객을 태운 버스가 연이어 도착하고, 중국의 물품을 구매하여 돌아가는 보따리 장사도 많았다. 시내 곳곳에서 러시아 주민과 관광객을 찾아볼 수 있었다. 북한 핵문제로 인한 대북제재로 북중 간 국경무역은 많이 위축된 상태이어서 훈춘 시민은 북한 핵문제 해결을 학수고대하는 분위기였다.

훈춘에서 옌지로 돌아오는 길에 투먼시에 들렀다. 투먼시는 북한 함경북도 남양시와 두만강을 사이에 둔 국경도시이다. 투먼과 남양을 이어주는 다리와 철교가 일제 강점기 때 건설되어 지금도 운용되고 있다.
1941년 11월 건설된 콘크리트 다리는 많이 낡아 바로 옆에 중국 측에서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고 있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전망하고 북한과 연결되는 도로와 철도와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고 있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였다. 방문 당시 북한에서 화물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오는 트럭을 발견했다. 이 다리 바로 위쪽에는 투먼과 남양을 이어주는 철교도 가설되어 있었다. 북한 핵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지 불투명한 상태에 있지만, 북·중 국경도시는 조용한 가운데서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 형국이다. 남북한을 중심으로 극동러시아, 중국 동북지역이 모두 발전하는 새로운 동북아 시대가 가까워진 것은 아닐까 생각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