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3년 만에 재심사도 외면
보류사유 "아직 밝힐 수 없다"
현대사의 거목이자 인천이 낳은 걸출한 독립운동가인 죽산 조봉암(사진·1899~1959) 선생의 독립유공자 서훈이 또 무산된 것으로 확인됐다. 3년 만의 재심사에서도 정부는 죽산을 외면했다. 59주기를 맞은 죽산의 명예회복은 절반에 그치고 있다.

국가보훈처는 죽산의 독립유공자 서훈 신청에 보류 결정을 내렸다고 30일 밝혔다.

국가보훈처 관계자는 "이번 주 안에 심사 결과를 유족에게 통보할 예정"이라며 "보류 사유에 대해선 아직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죽산조봉암선생기념사업회는 지난 3월 국가보훈처에 죽산의 독립유공자 공적 심사를 재신청했다. 죽산은 그동안 수차례 독립유공자 심사에 오르고도 공로를 인정받지 못했다. 국가보훈처는 지난 2011년과 2015년 광복절을 앞두고 "일제 말기 행적이 불분명하다"며 죽산을 독립유공자 포상에서 제외했다. 앞서 2005년에는 "간첩죄에 대한 사면·복권 등의 법적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유를 댔다. 2011년 대법원 재심에서 무죄 판결로 '사법살인'을 당했던 누명은 벗었지만 이후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지 않았다.

국가보훈처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의 단신 기사를 문제삼아왔다. 1941년 12월23일자에 '인천 서경정(지금의 중구 내동)에 사는 조봉암씨가 국방헌금 150원을 냈다'는 기사다. 당시 죽산의 주소가 부평이었다는 기록, 성금을 낼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는 증언에도 국가보훈처는 유가족에게 "보완 자료를 제출하라"는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죽산의 손녀사위인 유수현 기념사업회 이사는 이날 "죽산 선생의 위상을 생각하면 일제가 보이지도 않는 작은 기사 정도로 다루지 않았을 것"이라며 "1945년 8월15일까지 수개월 동안 구금됐던 죽산 선생의 당시 기록을 찾을 수 없어서 답답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7년 대통령 직속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이 일제에 항거하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복역한 사실이 있으므로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상당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조봉암 평전'을 쓴 이원규 소설가는 지난해 11월 '죽산 조봉암 선생 재조명 시민토론회'에서 "죽산 선생의 명예회복은 독립유공 훈장을 추서받아야 완결된다"고 말했다. 죽산의 59주기 추모식은 31일 오전 11시 서울 망우리공원 묘소에서 열린다.

/이순민 기자 smlee@incheo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