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방주서 내딛은 땅, 150만명 대학살 아픔도 고스란히
노아가 방주서 내딛은 땅, 150만명 대학살 아픔도 고스란히
  • 남창섭
  • 승인 2018.05.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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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로드 2018] 1 아픈역사 간직한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

1차 세계대전 오스만제국 대학살

도피하려 600만명 해외로 흩어져


추모공원·비, 평화 소중함 일깨워

노아 방주 닿은 아라라트산이 성산

전세계 최초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
 

▲ 호르비랍 수도원과 아라라트산
▲ 제노사이드 추모공원에서 헌화 하는 모습
▲ 제노사이드 추모공원 추모비
▲ 게가르드 수도원 전경.


#아르메니아 제노사이드 현장에 서다

아르메니아인은 제1차 세계대전 때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강제 이주와 학살을 당했다. 전쟁 당시 이들이 적국인 러시아와 손을 잡으려했기 때문이다. 학살로 희생된 인원은 150만명에 이른다.

이 대학살을 피해 많은 난민들이 세계 도처로 흩어졌다. 현재 약 600만명이 해외에 있다. 아르메니아 인구의 두 배에 이르는 수치다. 디아스포라의 슬픈 역사는 예레반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도심을 흐르는 라잔 강 서쪽 언덕에는 제노사이드 추모공원이 있다. 이 공원은 대학살 50주년인 1965년에 아르메니아인들이 당시 소련 정부에게 학살의 인정과 위령탑 건설을 요구하는 시위를 통해 얻어낸 것이다.

추모공원 입구에는 이곳을 방문한 각국의 주요 인사들이 대학살을 인정하는 뜻으로 심은 수목(樹木)들이 있다. 학살당시 희생자들의 마을이 새겨진 추모의 벽을 지나면 남쪽으로 아라라트산을 바라보며 추모비가 세
워져 있다. 추모비는 12개의 석판이 원형으로 둘러섰고 오른편에는 40m에 이르는 첨탑이 우뚝하다. 12개의 석판은 오늘날 터키의 영토가 된 소아르메니아의 12개 지방을 의미한다. 첨탑도 두 개로 이루어졌는데, 작은 것은 소아르메니아를 의미하는 것이다.

원형의 석판 가운데는 꺼지지 않는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불꽃 주변에는 추모객들이 놓고 간 조화가 가지런하다. 평화를 상징하는 흰 비둘기가 몇 마리 날아든다. 잠시 묵념에 잠기려할 때 비둘기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진다. 다가서도 날지 않는다. 비둘기는 날개도 상했고 눈도 다쳤다. 대학살을 당한 영혼들의 절규인가, 제노사이드 인정을 요구하며 평화를 갈구하는 아르메니아의 냉혹한 현실인가.

공화국 광장에 있는 국립역사박물관에도 가슴 아픈 역사가 전시되어 있다. 참담함과 슬픔으로 점철된 근현대사는 이를 둘러보는 사람들에게 동정과 평화의 소중함을 동시에 일깨워준다. 아르메니아의 국화(國花)는 '물망초'다. 꽃말이 의미하듯이 디아스포라와 대학살의 슬픈 역사를 잊지 말자는 다짐에서다.

# 전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공인한 나라
아라라트산은 아르메니아인들의 성산(聖山)이다.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가 닿은 곳이 이 산이고 노아가 첫 발걸음을 디딘 곳이 아르메니아 땅이기 때문이다. 수도인 예레반도 노아가 방주를 나서면서 했던 '보인다'라는 뜻이다. 하지만 아라라트산은 현재 터키의 영토다. 터키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호르비랍(Khor Virap)수도원이 가장 가까이서 성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르메니아는 로마보다도 12년 먼저 전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한 나라다. 호르비랍 수도원은 최초로 기독교를 전파했던 성 그레고리가 13년간 감금되었던 곳이다. 그는 공주의 현몽(現夢)으로 티리다테스 3세의 병을 고쳐준다. 이에 감명을 받은 왕은 박해를 풀고 칙령을 내려 최초의 기독교 왕국이 탄생되었다.
수도원 가까이에 이르자 아라라트산이 손에 잡힐 듯하다. 평원을 수놓은 포도밭 너머 나지막한 언덕에는 이곳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성지(聖地)인 호르비랍 수도원이 있다. 아르메니아는 최초의 기독교 국가답게 수도원과 교회가 많다. 아르메니아정교회는 독자적인 정체성을 유지하며 아르메니아인의 단결과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다.

에치미아진의 마더성당은 성 그레고리가 4세기에 지은 것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이다. 게가르드 수도원도 아르메니아를 대표하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 위에 세워진 수도원은 암굴에서 시작되었다. 호르비랍에 감금되었던 그레고리가 맨 처음에 이곳 동굴에서 성스러운 샘물을 발견하고 수도원을 세웠다. 하지만 지금은 예수의 옆구리를 찌른 창이 발견된 곳으로 유명하다.

가르니 사원도 빠뜨릴 수 없는 곳이다.

이곳은 코카서스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그리스풍의 열주(列柱)가 있는 사원이다. 몽골 침입 당시에 무너진 것을 소련시대의 고고학자들이 복원해 놓았다. 기원전 1세기에 만든 왕의 별장과 목욕탕도 발굴되었다. 칸칸이 만들어진 방마다 온돌의 흔적이 있다. 우리의 찜질방과 같은 구조가 2000여 년 전 이곳에도 있었다니.

 

 

 

 

고대 인류의 문명교류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임을 알 수 있다. 목욕탕 안쪽에는 모자이크타일로 된 방이 있다. 반 정도 남아있는 타일 한 가운데에 '우리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일했다.'고 새겨놓았다. 계급사회를 살아야했던 힘없는 민초들의 항변이 21세기에도 오롯하다.

인천일보 실크로드탐사취재팀
/남창섭 기자 csnam@incheonlibo.com
/허우범 작가 appolo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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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르미네 함바르줌옌 인터뷰

인터뷰/ 언론인 출신 한류 1세대 {아르미네 함바르줌옌}
"전세계 흩어진 동포들, 다시 돌아오는 나라 됐으면"

아르미네 함바르줌옌(28·Armine Hambardzumyan)은 아르메니아에서 한국어를 처음 전공한 한류 1세대다. 수도 예레반에 있는 국립언어대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웠고 한국으로 유학까지 갔다 왔다. 하지만 한국어를 사용할 곳이 없어 언론인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 최근 한류 붐을 타고 한국 여행객과 기업투자가 늘어나면서 한국어 통역사로 활약하고 있다. 젊은 세대이면서 한국을 처음 접한 그녀에게 아르메니아의 속얘기를 들어봤다. 그녀를 만날 당시에 아르메니아는 시위가 한창이었다.

▲최근 정치상황은 어떤가.
-10년 동안 대통령했던 분이 내각제로 바뀌자 다시 총리를 하겠다고 하니 국민들이 화가 났다. 새로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큰 상황이다.
아르메니아가 너무 느리게 변하고 있다는 불만이 젊은층에서 강하다. 이번 시위에 적극 참여하는 것도 기득권의 부패문제도 있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열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대학 졸업해도 절반밖에 취업이 안 되고 경제발전은 느리고, 일자리는 없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제는 바꾸고 싶다. 재작년 한국에서 촛불혁명으로 대통령을 새로 선출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평화시위로 권력교체가 가능하다는 것을 봤다. 우리도 폭력은 사용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에 대한 젊은 사람들 생각은.
-1915년 오스만튀르크에 의해 아르메니아인 150만 명이 학살당했다. 우리 가족도 친척이 거의 없다. 당시 다 돌아가셨다. 할아버지와 여동생 두 분만 살아남았고 여동생은 프랑스 고아원으로 갔다. 생사도 모르던 두분이 다시 만난건 50년 후였다. 대학살 때문에 아르메니아 사람 수백만명이 전 세계로 흩어졌다. 그들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희망한다. 예전 소련시절에는 무서워서 학살을 추모하지도 외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도 어려웠다. 이제 올 수는 있지만 일자리가 없어 망설인다.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아르메니아를 만들고 싶다.
우리 민족의 영산인 아라라트산은 현재 터키 영토에 있다. 직접 찾아가 본 적이 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팠다. 거기에서 만난 터키사람은 우리는 친구라며 과거 일에 대해 미안하다고 한다. 하지만 터키 대통령은 지금도 잘못한 것 없다며 사과하지 않는다. 우리와 터키와의 상황은 한국과 일본 관계와 비슷한 점이 많다. 일본 사람들이 식민지배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 것도, 역사를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것도 닮았다. 우리는 터키가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용서할수 있다. 그게 해결책이다.

▲한국에 대한 인식은.
-고려인과 한국인이 같은 민족인지는 나중에 알았다. 아르메니아에도 고려인들이 있다. 강제이주 당한 분들이다. 예전 예레반 근처에 고려인 고아원도 있었다. 한국갔을때 아르메니아에서 왔다고 하니 젊은 친구들이 아무도 몰랐다. 지도에서 터키 옆에 있다고 해야 겨우 알았다. 최근 이곳 학생들은 한국에 대해 관심이 많다. 2000년대 들어 주몽을 시작해 한국 드라마 열풍이 불었다. 이어 케이 팝이 유행하면서 후배들도 동아리 만들어 춤추고 노래 부르며 관심이 대단하다. 슈퍼주니어와 빅뱅, 방탄소년단, 소녀시대, 트와이스 등이 인기가 많다.
제가 바라는 건 한국 사람들도 아르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 알아주면 좋겠다. 아픈 역사를 간직한 아르메니아와 한국은 많이 닮았다. 두 나라 모두 평화롭게 살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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