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같은 신포동 … 믿고 먹는닭

시원한 닭육수·묵은지가 일품인 '그 집'


"신포동이야말로 개항 때부터 20~30년 전까지 인천의 중심이었죠. 학생, 청년들부터 나이드신 분들까지 신포동과 동인천에서 먹고 마시고 즐겼죠. 인천의 멋과 낭만, 유행이 신포동에 뿌리를 두고 있잖아요. 인천사람이면 누구나 신포동에 추억 하나씩은 있을걸요."

영하 15도 안팎으로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를 보내던 날, 신포동과 남다른 인연을 갖고 있는 여성들이 '픽미픽미' 세 번째 집인 '닭면가'에 모였다.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장, 신포동 재즈클럽 '버텀라인'의 허정선 대표, 3년 전 출판사 다인아트를 신포동에 옮기고 북카페를 차린 윤미경 대표, 신포동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는 서은미 사진작가다.

"부산에서 대학 졸업하고 대학원 마치고 인천시립박물관에서 학예사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게 2001년이었어요. 처음 인천에 와서 선배들이 맛있는거 사준다고 할 때 짜장면이나 쫄면, 만두를 먹으러 온게 신포동이에요. 당시에는 먹는 것만 기억에 남았는데 나중에 공부하고 보니 개항과 근대건축물 등 인천의 중심지였다는걸 알게 됐죠."

경남 진해 출신의 신 관장이 신포동과의 첫 인연으로 이야기를 꺼내자, 35년된 재즈클럽 '버텀라인'을 24년째 지켜오고 있는 허 대표가 이어 받았다.

"신포동이 한참 잘나가던 94년에 말그대로 '끝물'을 타고 '버텀라인'에 왔는데 권리금 8000만원에 월세가 180만원이었어요. 지금도 상상 못할 금액인데 IMF까지 맞으면서 참 어렵게 버텨왔죠. 요즘 신포역도 생기고 신포시장이니 차이나타운이니 하며 사람들이 많이 찾지만 경기가 눈에 띄게 나아지진 않았어요. 그래도 '버텀라인'을 지킬 수 있었던 건 어른들, 젊은이들 모두 꾸준히 찾게 만드는 신포동만의 정서나 분위기 때문인 것 같아요."

▲ 신포동을 좋아하는 여인들이 찾은 닭면가. 사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신은미 한국이민사박물관장, 서은미 사진작가, 허정선 재즈클럽 '버텀라인' 대표, 윤미경 도서출판 다인아트 대표.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 때까지 신포동을 자주 찾았다는 서 작가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고 나섰다.

"어릴 때 신포동에는 사람들이 진짜 많았어요. 다니다보면 5분에 한두명씩 꼭 아는 친구들을 만나곤 했죠. 또 각자 친구들끼리 모이는 '아지트'가 있었어요. 당시에는 곳곳에 있던 크지 않은 짜장면집, 쫄면집 등이 주로 가는 음식점이었는데 거기서 홍콩영화 비디오를 틀어주거든요. 친구들끼리 보면서 떠들고 울고 웃고 했죠. 그래서 그런지 결혼하고 직장 때문에 바쁘게 살다가도 나도 모르게 다시 찾게 되는 그런 곳이 신포동인 것 같아요."

20년 넘게 출판사를 운영하며 현재는 인천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로 있는 윤 대표는 사무실을 구월동에서 신포동으로 옮기며 또다른 신포동의 의미를 느끼게 됐다고 했다.

"3년 전 출판사가 20년이 되던 해에 신포동으로 넘어왔어요. 그 때는 어릴적 로망과 추억을 가지고 나름 우쭐해서 왔는데 와서 보니 냉면집은 60년 됐고, 국밥집은 50년이 됐고, 옆집은 40년, 어느집은 30년 등 대부분이 20년은 넘은거에요. 그런데 그분들은 아무 자랑도 안하고 그저 냉면 만들고 국밥 말고 그러는 모습을 보고 많이 반성하게 됐어요. 그런 면에서 신포동은 인천 문화의 상징성이나 원형질 같은 곳이에요. 오래된 곳이 갖고 있는 '아우라'라는게 우리가 굳이 가르치고 배우는게 아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매력인데, 그런게 신포동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주문한 음식들이 비워져 갈 때 여인들의 말이 빨라지고 짧아졌다.

"우리가 오늘 닭면가에 왜 모였지?" "신포동이잖아. 하하" "여기 닭육수가 시원하고 묵은지도 얼마나 맛있는데." "그러고 보니 신포동 얘기만 했네. 우리는 신포동을 선호하는 여인들인가?" "그래 '신·선·녀'야". "그래서 '신선녀'가 내린 결론은 인천 문화의 원형질인 신포동을 잘 살려서 젊은이들에게 물려줘야한다. 맞죠?"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

/사진제공=서은미 사진작가




●닭한마리 전골

'닭면가'에서 닭을 선택한 이유는 흰색 고기로 붉은색 고기보다 상대적으로 건강에 좋고 공급과 가격면에서 변동이 덜하기 때문이다. 이 집의 대표적인 음식이 '닭한마리 전골'인데 맑고 진하게 우려낸 '닭면가 육수'에 12호짜리 닭한마리를 종종 썰은 파와 후추 등 향신료를 듬뿍 넣어 끓이면 개운한 국물 맛과 담백하고 찰진 살코기 맛을 느낄 수 있다. 고기는 이 집만의 '찍어먹는 간장'에 살짝 찍어 먹으면 고소함과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입안에 맴돈다. 육수는 리필이 가능하고 사리로 나오는 칼국수를 넣어 끓인 뒤 묵은지와 함께 먹으면 또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
 


●닭물회

'닭물회'는 기름 뜨는게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제거해서 맑고 진하게 우려낸 닭육수를 살릴 수 있는 메뉴를 찾다 개발하게 됐다. 처음에는 초계국수를 하려다 여름에 칼칼하게 맛볼 수 있는 초장육수를 쓰는 물회로 방향을 바꿨다. '닭물회'는 여름철엔 냉면, 겨울철에는 칼국수로 면이 바뀐다. 칼국수 면은 정성들여 우려낸 육수가 탁해지지 않도록 전분이 섞이지 않은 100% 밀가루로 만든 면을 공수해 온다. 할머니가 40년 넘게 면을 뽑아온 배다리 근처의 제면소를 어렵게 찾아냈다. 닭고기와 칼국수를 초장육수에 비비듯 말아 먹으면 된다.
 


●화다닭

'화다닭'은 화요일에만 맛볼 수 있는 일본식 카레로 일본 요리에 관심이 많은 윤 세프가 요일별 메뉴로 제일 먼저 선보인 음식이다. '화다닭'이란 이름도 손님들의 공모를 통해 정했다. 카레를 선택한 이유는 윤 세프가 러시아와 일본을 오가는 배 주방에서 2년 정도 근무했는데 일본에 머물 때마다 일본 음식을 많이 보러 다녔다. 카레는 전세계에 보편화 된 메뉴지만 일본 카레는 여러가지 야채 중 가지를 꼭 사용하는 독특한 방식이 생각나 '닭면가' 손님들에게 맛보게 해주려고 선택했다. '화다닭'은 카레와 함께 밥과 닭고기를 비벼서 먹는다.




"잠깐! 닭면가에선 '신호등'을 확인하세요"

 


메뉴판에 조미료 첨가 정도 표기


인천 중구청 정문 바로 앞에 있는 '닭면가'는 이름 그대로 '닭과 면이 있는 집'이다.
윤상호, 정은정 동갑내기 쉐프부부가 운영하는 '닭면가'는 2012년 11월 오픈 때부터 '좋은 재료로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손님에게 제공하자'는 신념과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닭면가'의 최대 강점은 윤상호 요리사의 음식 솜씨와 애정이 담긴 닭육수와 맛간장이다. 여기에 고향인 경남 창원에서 부모님이 직접 재배한 각종 채소가 매일 택배로 올라오고 어머님이 직점 담근 묵은지를 계속 받아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닭면가'만의 맛을 선보인다.

윤 세프가 가장 공을 들이는 '닭면가'의 육수는 우선 닭 10마리정도를 등골을 발라낸 두 토막으로 나눠 물 10리터를 고압의 압력밥솥에 삶아낸다.

닭이 삶아지면 솥뚜껑을 열자마자 찬물 10리터가 담긴 통에 바로 담그면 고기는 탄력이 더해지고 물은 연한 육수로 변한다. 이렇게 '초벌 육수' 20리터를 다섯 차례 더 만들어 100리터 정도 되면 '애벌 육수'로 만들기 위한 작업이 들어가는데 닭에는 후추와 각종 야채를 갈아 밑간을 하고 파와 무를 살짝 구워 육수에 함께 넣어 4~5시간 끓인다.

이른바 유럽의 콩소메 스타일로 고기와 채소를 푹 고아 국물을 진하게 우려내는데 여기에 '닭면가'만의 비법이 더해져 맑고 투명한 육수가 완성된다.

이렇게 끓이고 식히고를 10시간가량 반복하며 만들어진 '닭면가' 육수는 이 집의 메뉴인 '닭한마리 전골', '묵은지 닭볶음탕', '닭반마리 칼국수', '닭반마리 곰탕', '육개장', '닭물회'에 쓰이고 점심특선인 '새우장 정식', '스팸밥 정식', '화요일 화다닭'에는 쪽파를 썰어 넣은 국으로 곁들여진다.

'닭면가'의 남다른 맛을 살리는 간장도 숨은 과정이 있다. '맛간장'은 기본적으로 간장의 염도를 줄이기 위해 밥알을 넣고 끓인 뒤 생강, 마늘, 청주, 물엿 등을 적당한 비율로 넣어 한번 더 끓여 준 뒤 '묵은지닭볶음탕' 등 볶음 요리에 사용한다.

닭요리의 살코기를 찍어먹는 간장은 시골에서 올라오는 고추장아치에 사용한 간장에 밥알로 염도를 낮추고 청양고추를 갈아서 식초, 설탕과 함께 넣은 뒤 물을 간장의 4배정도 부어 끓인 뒤 식혀지면 숙성겨자를 더하면 살코기 본연의 고소한 맛을 살리며 새콤, 달콤, 매콤한 맛이 은은하게 올라온다.

'닭면가'만의 '조미료 신호등' 표시는 모든 음식에 조미료 사용 여부를 메뉴판에 색깔별로 구분하는데 초록색은 조미료 무첨가, 노란색은 조미료 첨가 재료 사용, 빨간색은 조미료를 사용하는 요리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육개장은 빨간색이고 스팸밥 정식과 화다닭은 스팸과 카레에 조미료가 들어있어 노란색이고 대부분의 요리는 초록색이다. 032-777-8301

/여승철 기자 yeopo99@incheonilbo.com